[엔화의 추락 <상> ] 끝모를 엔화 추락, 어디까지

24개월來 최저 수준…BOJ, 초완화적 통화정책 고수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엔화가 2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최근 도쿄외환시장에서 1달러당 엔화는 136엔 후반까지 상승하며 가치가 뚝 떨어졌다. 일본 정부가 인위적으로 엔저를 용인한 게 산업 경쟁력 약화, 경제주체들의 구매력 하락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는 엔화 약세 현상과 일본의 정책방향을 진단해보고 국내 금융소비자들의 엔화 투자방법 등을 짚어보기 위한 시리즈물을 2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주>

 

[세계비즈=오현승 기자] ‘추락하는 엔화엔 날개가 없다?’ 

 

최근 1년새 엔화의 가치가 약 20%나 급락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긴축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데 반해 일본은행(BOJ)만 완화적 기조를 고수하고 있어서다. 엔화 가치 하락은 BOJ의 기대와는 달리 수입 경쟁력 강화 효과가 제한적인 데다, 일본 수입 물가를 자극시켜 가계의 부담마저 키우고 있다.

 

◆BOJ ‘나홀로’ 저금리 기조 고수…엔화 가치 ‘뚝’

 

 28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16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엔환율은 장중 한때 136엔 후반까지 상승했다. 이는 1998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주요 10개국(G10) 통화 중 하락폭이 가장 크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올해 1월 3일 달러·엔환율은 115.32엔에서 지난 27일 135.43엔까지 올랐다. JP모건은 미일 간 금리가 벌어지면서 엔화가 조만간 달러당 140엔을 돌파할 거라고 내다봤다.

 엔화 약세는 BOJ와 주요국 간 통화정책이 엇박자를 내고 있는 점과 연관 깊다. 연준을 비롯한 글로벌 중앙은행은 치솟는 물가를 잡고자 공격적인 긴축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면 BOJ는 이러한 흐름에 역행해 초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수하는 중이다. 일본은 저금리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입장이다. BOJ는 지난 16~17일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 금리를 -0.1%로 동결하는 현재의 대규모 금융 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BOJ 정책위원들은 “엔화 움직임이 일본 경제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문구를 이례적으로 삽입했지만 수익률 곡선관리 및 자산매입은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엔저는 일본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원자재 및 연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본 경제 구조에 마이너스 요소가 더욱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사회 연구소인 다이와소켄은 올해 1~3월의 평균 환율(달러당 116.2엔)에서 10% 더 엔화 약세가 이어지면 수출 증가 및 소득수지 증가는 0.11% 플러스 효과가 있지만 수입 가격 상승으로 인한 마이너스 효과가 0.16%나 된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올해 5월 무역수지는 2조 3847억엔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본의 무역수지는 지난해 8월부터 10개월 연속 적자다. 엔저는 금리가 낮은 엔화를 처분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달러를 매수하려는 ‘캐리 트레이드’ 유인도 더욱 키운다. 일본과 미국의 10년물 국채금리차는 무려 3%포인트를 넘어섰다.

 

◆ 엔저, 日 수입 물가 자극…韓 수출 영향도 살펴야 

 

 엔화가 약세를 거듭하면서 일본 소비자 물가도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24일 일본 총무성이 내놓은 ‘소비자물가지수’를 보면 5월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1%(신선식품 제외) 상승했다. 여전히 주요 선진국 대비 절대적 물가 상승폭은 낮지만 지난 2015년 3월(2.2%)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BOJ의 물가 관리목표인 2%를 두 달 연속 넘어선 것이기도 하다. 사미카와 이쿠코 일본경제연구센터 금융연구실장은 “원자재가격 상승과 엔화 약세가 진행되는 현 상황에서 BOJ의 완화적 통화정책은 개인의 구매력 저하를 유도하는 정책(‘자국궁핍화’)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염려했다. 임금 증가 속도가 더딘 상황에서 수입물가가 올면 개인소비가 위축될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편 엔화 약세가 한국의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선 전망이 엇갈린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 달러에 대비해 엔 환율과 원 환율이 동시에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한국과 일본 간 수출경합도가 완화되고 있어 일본 엔화 약세가 한국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무역협회는 한국과 일본 간 세계시장 수출경합도는 지난 2015년 0.487에서 지난해 0.458로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높은 산업에 대해선 수출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달 초 ‘수출경기 현황과 주요 리스크 요인 보고서’에서 “국내 제품의 브랜드, 품질경쟁력 등이 높아지며 수출에 있어 과거보다 엔저 영향력 줄어든 것 사실이지만 자동차, 기계, 전기·전자 등 일부 주력 품목은 여전히 주요국 시장에서 일본과 경합도가 높다”고 분석했다.

hs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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