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글로벌 경제, ‘디스토피아’ 그림자 드리워져

법무법인(유)지평 기업경영연구소 정민 수석연구위원

 글로벌 금융시장에 ‘검은 수요일’이 연출됐다. 미국 8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으며 다시 혼란을 초래했다.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달러 대비 각국의 통화가치는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꺾이고 금리 인상 속도도 늦춰질 거라는 기대감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더욱이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소비자물가가 되레 지난달보다 높게 나왔다. 그만큼 물가 상승세가 구조적이고 광범위해 물가상승을 쉽게 잡기 어렵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줬다.

 

 이로 인해 세계는 9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물가상승 압박으로 인해 이번 FOMC에서 자이언트 스텝인 75bp 인상이 기정사실로 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울트라스텝인 100bp 인상을 밟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세계 경제가 큰 충격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미국의 고물가 공포로 인해 코스피지수는 급락해 2400선이 붕괴되고 원·달러 환율은 1390선을 돌파하면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 번도 본 적 없는 1400원대 돌파까지 목전에 두게 됐다. 미국의 정책금리가 연말에 4%대로 예상되며 1년도 안 돼 제로금리에서 4%대 고금리 시대로 완전히 판이 바뀌게 된다.

 

 한국도 금리 역전에 따른 외국인 자금 유출, 원화 가치 폭락을 방치할 수 없는 만큼 3%대의 기준금리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을 일컫는 ‘3고 현상’이 가중되면서 우리 경제에 심대한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외화 부채가 많고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기업들이 환율폭탄에 속수무책일 것이다. 또 고환율은 수입물가를 끌어 올려 물가관리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금리 인상으로 가계가 체감하는 고통이 커지고 금융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기업들도 속출할 수 있다.

 

 세계 경제는 코로나19 위기 직후 상승 고점을 지나 하강 국면으로 이미 진입한 것으로 판단된다. 선진국 경제의 경기선행지수 하락세가 이어져 경기침체 국면으로 진입 가능성이 점증되고, 신흥국도 점차 하강 압력이 높아질 것이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병목 현상 등 다발적 위험 요인이 경기 하강 폭을 확대시킬 가능성이 높아졌고 IMF의 세계 경제 전망 기조로 보아 세계 경제 상황은 좀처럼 회복되기 어려워 보인다. 세계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 진입으로 우리 수출 경기도 악영향이 우려된다.

 

 여기에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물가상승과 지지율 하락이 맞물린 정치·경제적 위기 상황에 결국 ‘America first(미국 우선주의)’를 꺼내 들었다. ‘반도체 칩과 과학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전기자동차, 배터리 산업정책을 전면적으로 추진하면서 동맹국에 대한 배려도 점차 약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바이든 행정부로 들어서면 트럼프 행정부의 미·중 갈등이 점차 심화되면서, 본격적인 미·중 패권 전쟁이 전개돼 세계 경제의 또 다른 리스크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또 한국 기업들은 미국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산업정책으로 인해 차별에 대해 전전긍긍하는데다, 미·중 갈등 심화로 우리 경제와 기업에 미칠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가 경험했던 198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은 2차 오일 쇼크가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 스태그플레이션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봉쇄 및 공급망 훼손, 미·중 갈등, 자국주의 심화 등 복합형 위기 성격이 짙기에 정책적 대응의 한계가 존재한다.

 

 2012년 다보스 포럼에서 언급된 디스토피아(Dystopia) 상황이 최근 세계 경제에 등장한 다양한 리스크 요인들이 중첩되면서 재현되고 있다. 디스토피아는 ‘테일 리스크(tail risk)’에 해당한다. 꼬리 위험은 정규분포 상 양쪽 끝에 발생할 확률이 낮은 것을 의미하는데 선제적인 대응을 하지 못해 실제로 발생하면 커다란 충격을 몰고 온다. 코로나19가 대표적인 사례지만 최근 판도가 바뀌면서 예측되지 않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 태풍 위기에 대응해 경제 주체들이 비상한 각오를 다지는 한편 생존을 위한 철저한 대비를 하는 것 외에 다른 묘수는 없다. 과거 달러 유동성 위기가 발생했던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 당시 수준 만큼 외화자금 시장에 대한 경색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물론 양호한 대외 건전성을 기반으로 현재 외화자금시장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으나 유동성 점검이 필요하다.

 

 또 저물가·저금리 구조가 적어도 한 단계 높아진 물가·금리 구조로 이행하는 단계에서 기업이나 가계의 투자·소비 결정, 부채구조 등은 달라진 상황에서 새롭게 조정하고 재정 건전성이 악화되지 않도록 재편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공급망 재편, 신냉전 시대 도래 등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안정적인 성장기반을 확립하기 위해 최선의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법무법인(유)지평 기업경영연구소 정민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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