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내전 현장·교도소가 ‘거대 갤러리’로… JR의 예술 세계

롯데뮤지엄서 첫 대규모 사진전
빌딩·빈민촌 등에 대형 사진 부착
특정 집단에 대한 통념 변화 유도
“예술 통한 소통의 힘 크다 생각”

제이알(JR)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희원 기자

“예술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장소에 예술을 선보이고 싶다. 그곳 사람들과 엄청난 프로젝트를 벌이고,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싶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사진작가이자 거리 예술가 제이알(JR·41)의 20년간의 작품세계가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펼쳐진다. 

 

29일 뮤지엄 측에 따르면 JR은 세계 도시 곳곳의 대형 빌딩, 빈민촌과 우범지역, 국경지대와 내전의 현장에 붙여진 대형 초상 사진 프로젝트에 주로 나선다. 이를 통해 기존 관념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키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중이다.

 

최근 롯데뮤지엄이 연 언론 공개행사에서 만난 제이알은 “나는 ‘도시의 벽들’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갤러리를 가진 아티스트”라고 소개했다.

 

롯데뮤지엄은 제이알의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 ‘JR: CHRONICLES’를 진행 중이다. 2019년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을 시작으로 2022년 독일 뮌헨 쿤스트할레에 이은 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회고전이다.

 

롯데뮤지엄 관계자는 “제이알은 세상 속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라며 “세계 거리 곳곳에 대형 흑백 사진을 전시하는 그의 작품은 세상을 캔버스로, 예술을 통해 개인의 목소리를 밝히는 희망의 연대기”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도시의 건물과 거리를 캔버스와 갤러리 삼아 활동해온 작가의 사진, 페이스트 업(past-up, 콜라주처럼 이미지를 잘라 붙인 작품), 영상, 프로젝트 아카이브 등 약 140 여점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예술로 세상을 바꾸는 사진작가의 20년간 행보가 담겨 있다.

 

이와 함께 서울 전시를 위해 작가가 작업한 롯데뮤지엄 안에서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아나모포시스 작품도 눈길을 끈다. 

‘JR: CHRONICLES’ 전시 전경. 롯데뮤지엄

◆공공예술로 특정 집단에 대한 ‘왜곡된 시선’ 변화

 

1983년 프랑스 파리 외곽에서 동유럽과 튀니지 이민자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열세 살 때부터 ‘페이스3(Face 3)’라는 가명으로 도시 곳곳의 빌딩과 옥상, 지하철 등에 그래피티를 남겼다.

 

2001년 파리 지하철에서 우연히 주운 카메라가 그를 사진의 세계로 이끌었다. 함께 어울리던 동료 아티스트들의 그래피티와 활동을 기록하는 게 시작이었다.

 

제이알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2005년 10월, 클리시수부아에서 발생한 ‘소요 사태’다. 당시 그는 파리 도심 곳곳의 건물 파사드에 거대한 초상화를 설치하며 ‘세대의 초상’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편향된 미디어로 인해 사회의 위협적인 존재로 왜곡된 지역사회 및 구성원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는 게 제이알의 설명이다. 이를 통해 그는 특정 집단에 부여된 사회 통념이 부당하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파리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

제이알 전시를 관람하고 있는 관객. 사진=정희원 기자 

이후 제이알은 대형 초상 사진을 공공장소에 부착하는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장소의 상황과 결합해 만들어내는 이미지로 ‘익명의 다수’로 존재하는 구성원들의 개인성과 권리를 사유하게 만든다. 단순히 작품을 남기는 것을 넘어, 이들 공공예술이 어떻게 변해가고 소비되는 과정 자체도 예술의 범주에 넣었다.

 

전시에서는 제이알이 곳곳을 다니며 진행한 상징적인 프로젝트를 살펴볼 수 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세대의 초상(2004~2006)을 시작으로 TED상을 받은 프로젝트 ‘인사이드 아웃(2011~ )’도 전시돼 있다.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Times Square, New York City, Installation image, Wheat-pasted posters on buildings, 2013. © JR-ART.NET) 
여성은 영웅이다(Women Are Heroes, Action in Favela Morro da Providencia, Favela by day, Rio de Janeiro, Color lithograph, 2008. © JR-ART.NET) 

이와 함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을 넘나들며 서로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초상화를 붙인 ‘페이스 투 페이스(2006~2007)’ ▲스페인의 항구 도시 카르타헤나의 변화와 역사를 함께했지만 소외된 노년층을 다룬 ‘도시의 주름(2008~2015)’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캄보디아·인도·케냐·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 등에서 부당한 위협을 겪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여성은 영웅이다(2008~2010)’ 등이 전시돼 있다. 

 

각국을 여행하며 담아낸 전 세계 지역사회 주민들의 이야기와 세상의 그림자 같은 대상을 향한 작가의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총기 연대기: 미국의 이야기 THE GUN CHRONICLES: A STORY OF AMERICA (2018)  롯데뮤지엄 제공
도시의 주름 THE WRINKLES OF THE CITY (2008-2015) 롯데뮤지엄 제공

◆공공예술 프로젝트 참여한 재소자들 ‘이렇게 변했다’

 

전시된 작품 중 미국 캘리포니아 테하차피 교도소에서 재소자들과 함께한 프로젝트 ‘테하차피(2019)’도 관심을 모은다. 2010년 제이알은 미국에서 가장 폭력적인 재소자가 수감 중인 테하차피 교도소를 찾는다.

 

프로젝트 착수 전 교도관과 재소자들, 그리고 재소자들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들 등 많은 이들을 설득해서 동의를 구해야 하는 어려운 시간들이 있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재소자들 각자의 사진을 찍고 그들의 사연을 녹음했다.

 

이후 스튜디오에서 338장의 사진을 출력해 교도관, 재소자들 모두가 교도소 운동장에 모여 사진을 함께 부착하며 작품을 완성했다. 이후에도 제이알은 지속적으로 테하차피를 찾았다.

 

 테하차피 Tehachapi (2019) 롯데뮤지엄 제공
제이알(JR)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희원 기자

놀랍게도 시간이 흐르며 처음 작업에 참여했던 재소자 중 3분의 1가량이 보안 등급이 낮은 교도소로 이감됐고, 3년이 지나자 모든 재소자들이 추가로 등급 낮은 교도소로 이감됐으며, 전체 인원 중 3분의 1은 바깥 세상으로 나와 자유를 얻었다.

 

제이알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재소자들의 사연을 듣고 재소자를 향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된 게 계기중 하나였다”며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발휘된 예술을 통한 소통의 힘을 다시 실감했다”고 말했다.

 

한편, 롯데뮤지엄은 제이알의 작품 세계를 더욱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문 도슨트 작품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매일 11시, 오후 2시, 오후 4시 방문 시 참여 가능하다.

 

또 유치원생부터 중학생 아이들을 대상으로 전시 설명을 듣고 창작 활동을 하면서 작품세계를 다각도로 이해하도록 돕는 미술 교육 프로그램 ‘아트 스튜디오’도 운영한다. 그의 작품은 오는 8월 6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롯데뮤지엄은… 신동빈 롯데 회장이 2015년 주도해 설립한 롯데문화재단에서 운영한다. 그동안 마틴 마르지엘라, 셰퍼드 페어리, 알렉스 프레거, 김정기, 장 미쉘 바스키아, 제임스진, 케니 샤프, 알렉스 카츠 등 현대미술 거장부터 떠오르는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전시해왔다.

 

정희원 기자 happy1@segye.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egye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