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광장] 오락가락 대출 정책은 이제 그만

 “지점 분위기가 진짜 말이 아니야. 사실 리테일(개인·소매금융)이 규정이 까다롭고 어려운데, 정책이랑 지침이 계속 바뀌니깐 결국 욕먹는 건 은행 창구야.”

 

 오랜만에 저녁 모임에서 만난 친구 A가 한 말이다. 대학교 친구 A는 국내의 모 은행에서 일한 지 10년이 되는 행원이다. 친구로부터 창구에서 겪은 이런저런 일을 들으면서 고충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이 어려움이 더 커졌다고 A는 하소연했다. 

 

 “대출받기 더 어려워진다고 하니깐 미리 신청해서 다행히 받았어. 연말에 결혼해서 이 시기에 전세자금대출을 받고 싶었을 뿐인데, 은행마다 기준이 다 다르더라고. 또 지난주엔 됐다가 이번 주엔 안된다고 하니 직원도 미안해하고, 우리도 답답했어.” 

 

 또 다른 친구 B는 신혼집을 마련한다고 들었는데, 몇 달 만에 연락을 하니 대출받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은행원과 대출 실수요자. 두 친구가 위치한 자리는 달랐지만, 생각은 비슷했다. 금융당국의 오락가락한 가계대출 관리 방침 때문에 피해 보는 건 결국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두 달 가까이 내뱉은 ‘대출 규제’ 발언으로 대출 시장과 소비자에 혼란을 빚은 것에 대해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이 원장은 지난 1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국내은행 은행장과 간담회에서 “국민이나 은행 창구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불편과 어려움을 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가계대출을 엄정하게 관리하겠다는 당국 기조는 변함이 없다”며 “은행의 영업 계획이나 포트폴리오 운영과 관련해 적절한 자율심사 등을 통해 관리해야 한다는 기조에 금융당국 간 이견이 없다"고 전했다. 

 

 이 원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행권의 가계대출 관리와 관련해 금융당국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지난달 25일 이 원장은 가계 대출 상승을 자제하기 위해 은행들이 금리를 올리는 것에 대해 ‘은행권의 손쉬운 금리 인상’이라고 질책하며 ‘강한 개입’을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불과 보름 만에 입장이 정반대로 선회했다. 그 사이 은행들은 1주택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중단,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 제한, 신용대출 한도 연 소득 제한 등 방안을 경쟁적으로 내놓았고, 대출 실수요자들은 까다로워진 규정에 발만 동동 굴렀다. 

 

 그렇다면 현장에서의 혼란은 줄어들까. 이 원장은 가계대출 관리에 대해 은행권에 자율적으로 할 것을 주문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도 지난 6일 “정부의 획일적 통제보다 은행권의 자율적 관리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계대출 메시지와 관련해 금융당국 간 ‘엇박자’ 논란이 제기되자 금감원이 금융위와 통일된 기조를 내비쳤다.

 

 하지만 이를 두고 가계대출 문제에서 한발 물러선 느낌이 든다. 오락가락한 메시지로 현장에 혼선을 주더니 이제는 가계부채 문제와 실수요자 피해 예방에 대해 은행에 책임을 떠넘긴 모양새가 됐다. 결국 그 피해는 또다시 현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은행권에 자율 관리를 요청했으니 이제 은행마다 대출 규제가 전부 달라 실수요자들의 혼란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8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130조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나타냈다. 금융권에선 가계대출이 이미 포화 상태에 다다랐다는 얘기가 나온다. 더 이상의 혼란이나 실수요자 피해가 일어나선 안 된다. 금융당국은 실수요자 기준 등 기본적인 원칙이나 일관된 정책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혼란을 줄이고 가계대출 증가세를 막는 ‘소방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가계대출은 한국 경제 성장을 억누르는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제 금융당국이 나서 일관되게 고삐를 잡아야 할 때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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