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권의 부동산 이야기] 민간임대주택, 세금은 걷고 책임은 안 진다 — 분양을 미룬 자의 손해

 민간임대주택은 한때 ‘공공과 시장의 중간지대’로 불렸다. 그러나 세제 혜택은 사라지고 금융규제는 강화됐으며 분양은 미뤄지고 있다. 지금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제도적 고아가 됐다. 정부는 민간임대사업자를 공공의 보조자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책임을 떠넘겼고 그 결과 임대사업자는 공공의 책임을 대신 지며 시장의 리스크를 홀로 감당하고 있다.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다. 민간임대사업자는 정부가 정한 임대의무기간(4~10년)을 지켜야 한다. 그 기간 동안 주택을 팔 수도, 분양전환을 할 수도 없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은 그 사이 여러 번의 사이클을 경험한다. 즉 정부가 정한 의무기간이 길수록 시장 변동에 따른 손익 격차가 커지고 사업자는 의무를 다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에 갇히게 된다.

 

 2020년 분양을 미루고 임대형으로 전환한 한 단지를 예로 들어보자. 현재 시세 기준으로 세대당 2억 원 이상의 차익을 놓친 셈이다. 그러나 의무기간이 끝날 때까지 분양할 수 없으니 그 손해는 고스란히 사업자나 투자자가 감당한다. 정부는 세제 혜택을 근거로 이런 의무를 부과했지만 지금은 그 혜택조차 폐지되거나 축소됐다. 결국 민간임대는 혜택은 사라지고 규제만 남은 제도적 모순이 됐다.

 

 양산의 복합 민간임대지구는 그 전형적 사례다. 정부의 등록 장려책에 따라 2019년 착공됐지만, 금리 급등과 경기 침체로 사업자들은 연쇄 적자에 빠졌다. 분양전환을 하려 해도 의무기간 미이행에 따른 세제 환수와 가산세 폭탄이 가로막는다. 일부 단지는 미분양으로 남고 공실률이 30%를 넘으며 건물은 서 있지만 임차인은 빠져나간 ‘좀비단지’로 변했다. 사업자는 팔 수도, 버틸 수도 없는 사면초가에 놓여있다.

 

 세금 구조 또한 불합리하다. 과거 정부는 임대사업자에게 종부세 합산 배제, 양도세 감면, 취득세 감면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그러나 2020년 등록말소와 제도 축소 이후 대부분의 혜택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사업자는 여전히 의무를 져야 하고, 세입자 보호·보증금 반환·시설 유지 등 모든 부담이 남아 있다. 세금은 공공이 걷지만 책임은 민간이 진다. 제도는 공공의 이름을 빌렸지만 실질적으로는 민간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 금융규제까지 겹쳤다. 주택담보대출 총량규제와 PF 심사 강화로 임대사업자의 금융비용이 급등했다. 은행은 만기 연장을 거부하고, 사업자는 세입자의 보증금으로 이자를 갚는 악순환에 빠졌다. 공공은 이 구조를 방치하고 있지만 이는 실질적으로 ‘임대사업’이 아닌 ‘이자 관리 사업’으로 변한 셈이다. 수익 대신 부채를, 주택 대신 금융을 관리하는 것이 지금의 민간임대의 현실이다.

 

 문제는 공공성마저 희미해졌다는 점이다. 정부는 민간임대주택을 ‘공공성을 보완하는 주거정책’이라 설명하지만 임대료 상한이나 임차인 보호 장치는 사실상 시장에 맡겨뒀다. 반대로 시장은 이를 ‘규제가 과도한 사적 사업’으로 본다. 그 결과, 공공도 시장도 책임지지 않는 회색지대가 형성됐다. 정책의 이름만 공공일 뿐, 실질적 공공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임대사업자는 세금 추징을 걱정하며 버티고, 임차인은 분양전환이 언제 될지 몰라 불안하다. 정부는 세금과 정책효과만 챙기고 금융 리스크는 외면한다. 이 상황에서 민간임대의 붕괴는 시간문제다. 정책의 모순이 지속된다면 시장은 더 이상 공공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니다. 첫째 시장 상황이 악화될 경우 임대의무기간 중이라도 조건부 조기분양을 허용해야 한다. 둘째 세제 혜택이 폐지됐다면 의무기간도 축소하거나 폐지해야 한다. 셋째 보증금 반환을 위한 에스크로 계좌제 도입을 의무화해 사업자의 파산에 대비해야 한다. 정책은 시장을 이용할 수 있지만 시장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민간임대주택은 더 이상 공공의 대리자가 아니다. 공공은 세금을 거두고 제도를 설계하지만 시장 변화의 리스크는 민간이 떠안고 있다. 이 불균형이 지금 민간임대 위기의 본질이다. 분양을 미룬 자는 손해를 보고 규제를 지킨 자는 벌을 받는다. 세금은 공공이 걷고 리스크는 민간이 진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의 민간임대주택이 처한 현실이다.

 

정해권 부동산 재건축 탐사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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