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방한은 향후 글로벌 AI 산업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초대형 이벤트였다. 황 CEO는 AI 시장의 핵심 화두인 피지컬 AI 생태계를 함께 구축할 한국 내 사업 파트너들과 연이어 회동을 하고 협력 범위를 넓히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서 한국의 주요 제조업체와 IT사업자들이 글로벌 AI 생태계의 공동 설계자로서 그 지위가 격상됐다고 보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쿠다(CUDA) 등 강력한 플랫폼을 구축한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9일 산업계에 따르면 황 CEO는 지난 5일부터 4박5일간 한국 일정을 마치고 이날 오전 김포공항에서 출국했다. 황 CEO의 방한은 한국을 ‘AI 혁명’의 핵심 거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진행한 미디어브리핑에서 “한국엔 AI 연구자, 지역 전문가를 비롯해 여러 제조업과 중공업 등이 있다. 한국보다 더 (AI 변화에) 준비가 잘 된 나라는 없다”면서 한국을 치켜세웠다.
특히 이번 방한은 메모리 반도체 공급망을 안정화하기 위한 데에서 더 나아가, 피지컬 AI 분야를 함께 개척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엔비디아로선 자동차, 중공업, 반도체 등 막강한 제조 인프라를 구축한 한국 기업들이 더할나위 없는 적합한 핵심 파트너였다는 얘기다.
실제로 황 CEO는 국내 주요 기업들과 파트너십 강화를 선포했다. 특히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 간 협력 분야는 메모리 반도체에서 AI 인프라 전반으로 확장되면서 두 회사가 ‘AI 혈맹’으로 격상되는 모습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8일 엔비디아와 글로벌 AI 팩토리 구축을 위한 차세대 메모리를 공동 개발하고 반도체 설계 및 제조를 가속화하는 장기 기술 파트너십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종전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협력은 더욱 끈끈해졌다. 황 CEO는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최대 메모리 반도체 파트너로, 2년 장기공급계약(LTA)을 체결했다”면서 “이미 엔비디아는 SK하이닉스로부터 매년 수십억달러 상당의 제품을 구매하고 있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SK텔레콤은 AI 작업에 특화된 데이터센터인 AI 팩토리를 GW(기가와트)급 스케일을 목표로 확장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반도체 팹, 데이터센터 등 AI 팩토리 구축에서부터 공동 연구개발(R&D)까지 협력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구상이다.
현대자동차그룹과는 차량용 AI를 넘어 로봇과 스마트 제조, 피지컬 AI 분야 전반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의 새만금 투자 프로젝트에 엔비디아가 합세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또 엔비디아는 LG그룹과는 피지컬 AI분야에서 엔비디아의 ‘아이작 그루트’ 생태계 기반 레퍼런스 로봇을 공동 개발하고 LG의 제조 데이터와 엔비디아의 AI 컴퓨팅 기술을 결합해 지능형 자율 제조 생태계를 구축에 나서기로 했다.
다만 한국 기업들의 엔비디아 의존도가 심화하는 게 아니냐는 염려도 나온다. 이번 방한을 통해 주요 기업들과 맺은 AI 파트너십은 궁극적으로 엔비디아 플랫폼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는 한국 기업들이 AI 인프라를 확장할수록 엔비디아에 대한 기술 의존도 함께 깊어지는 구조라서다. 이 밖에 한국의 주요 기업들과의 협력 가능성을 내비치면서도 구체적으로 직접 투자 금액을 발표하지 않은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