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가 부추긴 부동산 왜곡] “대형보다 비싼 국평, 고신용자가 더 내는 금리”…규제가 부추긴 부동산·금융 ‘서열 역전’

그래픽=김세찬 기자
그래픽=김세찬 기자

대출 규제와 실거주 중심 세제 개편, 정책금융 쏠림이 맞물리며 부동산과 금융 시장 전반의 ‘상식적인 서열’이 흔들리고 있다. 아파트 시장에서는 전용 84㎡(국민평형)가 중대형보다 비싸지는 현상이 번지는 한편, 대출 시장에서는 신용점수가 더 높은 차주가 저신용자보다 가파른 금리 상승을 떠안는 ‘금리 역전’까지 발생하고 있다.

 

#최근 마포구 소재 아파트를 매수하려던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의아한 상황을 마주했다. 같은 단지 전용 104㎡(40평형) 매물이 15억4000만원에 나온 반면, 전용 84㎡(32평형)는 16억원에 매도 호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넓은 평형이 더 저렴했지만 김 씨의 선택은 84㎡였다. 40평형대는 세입자를 낀 매물이라 실입주가 어려웠고 담보대출 한도도 여의치 않았다. 반면 84㎡는 신생아 특례 등 정책대출 요건(전용 85㎡ 이하)을 충족하는 데다 추후 매도 시 환금성도 높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결국 김 씨는 6000만원의 웃돈을 주고 더 작은 평형을 계약했다.

 

이 같은 현상은 서울 곳곳의 실거래 통계로 확인된다. 3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강북구 미아동 ‘SK북한산시티’ 전용 84㎡(8층)는 지난달 9억2300만원에 거래돼 전날 팔린 전용 114㎡(17층·8억6500만원)보다 5800만원 높게 손바뀜됐다. 관악구 봉천동 ‘두산아파트’ 역시 84㎡가 13억6000만원에 팔려 114㎡(13억3800만원)를 추월했다.

 

◆15억 이하 거래 80% 돌파…중소형 상승률이 대형 압도

 

시장 왜곡을 부추긴 주원인으로는 15억원 기준의 대출 문턱과 전세난이 꼽힌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거래 중 15억원 이하 비중은 81.2%로 전월(76.3%) 대비 4.9%포인트 급증했다. 반면 15억원 초과 고가 단지가 밀집한 강남권 등에서는 매물이 적체되는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여기에 전셋값 상승에 따른 ‘생존 매수’도 가세했다. 한국부동산원 조사 결과 8월 넷째 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누적 상승률은 7.18%에 달해 매매가격 상승률(7.33%)에 육박했다. 전세금 불안을 느낀 실수요자들이 환금성이 뛰어난 국민평형으로 몰리면서 부동산 플랫폼 집캅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동북권 8개 자치구의 신고가 거래(154건) 중 33.1%(51건)가 전용 84㎡에 집중됐다.

 

KB부동산 집계에 따르면 올해 1~8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 상승률은 전용 60㎡ 초과~85㎡ 이하가 7.0%에 달했다. 반면 85㎡ 초과~102㎡ 이하는 2.7%, 102㎡ 초과~135㎡ 이하는 4.3%, 135㎡ 초과는 1.9% 상승에 그쳐 국평과 대형 평형 간 상승률 격차가 최대 3배 이상 벌어졌다.

 

◆고신용자 금리 뛰는데 저신용자는 하락…금융권도 ‘신용 역전’ 심화

 

문제는 집값 서열 파괴뿐 아니라 이를 조달하는 대출 금리 체계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신용도가 높을수록 낮은 금리를 적용받아야 하는 금융의 기본 원칙이 무너지는 모습이다.

 

최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7월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신용평점 950점 이상 고신용자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4.87%로 전년 동기(4.13%) 대비 0.74%포인트 상승했다. 901~950점 구간도 4.52%에서 5.32%로 0.80%포인트 뛰었다.

 

반면 저신용자 금리는 오히려 하락했다. 601~650점대 평균 금리는 지난해 8.384%에서 올해 8.188%로 떨어졌고, 600점 이하는 9.464%에서 8.37%로 1.094%포인트 급락했다. 개별 은행 단위에선 점수별 역전 현상도 나타났다. 신한은행의 경우 601~650점 금리가 7.89%인 반면 600점 이하는 7.38%로 더 낮았고, 농협은행 역시 601~650점(8.32%)보다 600점 이하(7.99%) 금리가 0.33%포인트 낮았다.

 

다만 이는 단순 시장 금리 왜곡이라기보다 여러 착시 및 정책 요인이 복합 작용한 결과라는 반박도 가능하다. 먼저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압박으로 은행들이 일반 고신용자 신용대출의 가산금리를 인위적으로 인상했기 때문이다. 또 600점 이하 저신용자 구간은 일반 대출이 대부분 거절되고 햇살론·새희망홀씨 등 정책서민금융(금리 상한/보증 지원) 비중이 높아져 통계상 평균 금리가 낮게 잡히는 착시 효과가 발생하기도 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가액대별 대출규제가 강화되다 보니 아무래도 최대 6억원까지 대출이 나오는 15억원 이하 중소평형 주택으로 실수요가 몰리고 있다. 15억 원 이하 중저가 주택 비중이 70% 후반대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 15억 초과 거리 비중은 20% 초반대에 그치고 있다”면서 “대출 규제 여파와 전세가격 불안, 금리인상 등이 겹치면서 이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규제가 유지되고 금리가 인상되면 이런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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