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맞춤 비만 치료제 출시를 앞둔 한미약품이 수년째 지속되는 경영진 내홍으로 뒤뚱거린다. 감량한 체중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일컫는 ‘요요 현상’처럼, 내부 갈등도 해소가 된 듯 싶다가도 다시 수면 위로 오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6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송영숙 한미그룹약품 회장과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 등은 지난 1일 한미약품그룹의 개인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의 위약벌 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앞서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지난해 6월 시니어케어 사업에 160억원을 투자하기로 의결했고 신 회장도 처음엔 찬성했으나 후속 이사회에서 투자 철회를 의결했다. 이에 송 회장 측은 신 회장이 주주 간 계약을 위반했다며 600억원의 위약벌 청구 소송을 낸 바 있다.
이번 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김석범 부장판사)는 신 회장의 행보가 적법하다고 판단했지만 송 회장 측이 항소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해당 소송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미약품그룹의 경영진 사이 갈등은 2024년 이후 여러 가지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2020년 창업주 임성기 회장의 갑작스런 별세 이후 선대회장의 아내인 송 회장, 장녀 임 부회장. 장남 임종윤 코리그룹 회장, 차남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대표, 그리고 선대회장의 고향 친구인 신 회장까지 얽혀 경영권을 두고 연합하거나 또 연합을 깨며 지리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것.
2024년 초 상속세 문제로 송 회장·부회장의 ‘모녀 측’과 임종윤·종훈 ‘형제 측’으로 나뉘어 갈등을 빚을 당시 신 회장은 처음엔 형제 측에 섰다가 다시 모녀 측과 손잡으며 국면을 반전시킨 바 있다. 결국 지난해 2월 그룹의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서 임종훈 당시 한미사이언스 대표가 사임하고 송 회장이 대표로 복귀하면서 분쟁은 모녀 측 승리로 일단락 됐다.
한동안 평화로운 듯했던 구도는 올해 초 신 회장과 박재현 당시 한미약품 대표 간 갈등으로 다시금 균열이 발생했다. 박 전 대표는 신 회장과 대화 녹취록을 공개하며 팔탄공장 임원의 성추행 징계 과정에서 신 회장이 가해자에게 조사 사실을 누설하고 비호했다고 주장했고 신 회장이 원가 절감을 위해 이상지질혈증 치료신약(로수젯)의 원료를 미검증된 중국산으로 바꾸려 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신 회장은 간담회를 열어 징계 절차에 관여한 바 없으며 오히려 박 대표가 연임을 위해 청탁하러 온 자리의 대화가 왜곡된 채 녹취록에 공개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가운데 송 회장이 박 전 대표의 손을 들어주고 신 회장을 저격하면서 사실상 동맹이 깨졌다. 한편 박 전 대표는 그 뒤 사퇴하며 한미약품을 떠났다.
이후 모녀 측과 신 회장 측의 이번 위약벌 소송과 양측의 한미사이언스 주식 매입 경쟁 속에 그룹의 경영권 다툼 구도는 모녀·임종훈 대표 측 연합과 신 회장·임종윤 회장 측 연합으로 재편됐다. 임종윤 회장은 신 회장에게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넘기는 것으로, 임종훈 대표는 한미사이언스 보유 지분을 신 회장 측이 아닌 다른 회사(나우아이비22호펀드)에 매각하는 것으로 서로 다른 노선을 걷게 됐다.
그 사이 ‘제3자 폭로전’도 발생했다. 지난 8월 한미약품 출신 김태호 전 큐어세라퓨틱스 대표가 송 회장 일가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을 주장하자 지난달에는 한미약품 전직 임원 3명이 신 회장과 장남을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한미그룹 측은 이미 전문경연인 체제를 구축한 만큼 위약벌 소송 건이 회사의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며 진화에 나섰으나 업계 및 소비자의 반응은 냉담하다.
한 소비자는 “한미약품이 10월에 출시한다는 비만약(에페글레나타이드)에 대한 기대감으로 기사를 자주 검색하는데 회사의 경영권 다툼 기사가 더 많이 보인다”고 꼬집었다. 업계 관계자 역시 “한미약품이 자체 비만 치료제 출시를 앞둔 시기임에도 또 다시 내홍에 발목을 잡히는 모양새”라며 “거의 3년째 이어지는 갈등을 지켜보는 이들의 피로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