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재조사를 거부하면서 조사에 차질을 빚었다. 전날 진행된 첫 조사에서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자신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이날 “윤 대통령 측은 변호인을 통해 오후 1시 50분쯤 ‘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취지로 불출석 의사를 전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윤 대통령이 건강상 이유로 조사 연기를 요청했고, 공수처는 이를 받아들여 오후 2시 재조사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윤 대통령의 건강이 좋지 않고 어제 충분히 입장을 얘기했기 때문에 더 이상 조사받을 게 없다”고 밝히면서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전날 공수처 첫 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개괄적으로 비상계엄의 정당성과 내란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윤 대통령 측은 설명했다. 변호인이 의견서를 제출해 심문 내용에 답변할 것이란 입장도 밝혔다.
공수처는 200여페이지의 질문지를 준비했지만, 윤 대통령은 체포 첫날인 전날 10시간여에 걸친 조사에서 “진술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발언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이름과 주소를 묻는 인정신문에도 답하지 않고, 조사 종료 뒤 조서 열람과 날인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퇴장해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한편 공수처는 15일 내란 우두머리 등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을 체포했다. 지난달 3일 발생한 비상계엄 사태 이후 43일 만이다. 현직 대통령이 수사기관에 체포된 것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윤 대통령은 체포 직후 공개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영상 메시지에서 “안타깝게도 이 나라에는 법이 모두 무너졌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수사권이 없는 기관에 영장이 발부되고, 또 영장 심사권이 없는 법원이 체포영장과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수사기관이 거짓 공문서를 발부해서 국민들을 기만하는 이런 불법의 불법의 불법이 자행되고 무효인 영장에 의해서 절차를 강압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보고 정말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체계를 수호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이렇게 불법적이고 무효인 이런 절차에 응하는 것은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불미스러운 유혈사태를 막기 위한 마음일 뿐이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앞서 지난달 18일, 25일, 29일 세 차례 걸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는 공수처의 요구에 불응했다. 이에 공수처는 지난달 30일 서울서부지법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이달 3일 1차 집행에 나섰다. 하지만 당시 경호처와 군인 200여명에 가로막혀 5시간 반 만에 철수했다. 공수처는 지난 6일 체포영장을 재청구해 다시 발부받았고 이날 관저 진입 3시간 만에 윤 대통령을 체포했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