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높은 대출금리 등의 영향으로 올해 1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이 전분기 말 대비 14조원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4분기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큰 감소폭이다. 가계 빚의 디레버리징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이러한 흐름의 지속 여부는 대출금리 하락, 부동산 거래 회복세 등에 영향을 받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23일 발표한 ‘2023년 1/4분기 가계신용(잠정)’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1853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분기말 대비 13조7000억원 줄었다. 통계 작성 이래 감소폭이 가장 컸다.
가계대출 잔액은 1739조5000억원으로 전분기 말 대비 10조3000억원 감소했는데 이 역시 역대 최대 감소폭이다. 주택담보대출이 5조3000억원 증가했지만 기타대출이 15조6000억원 줄었다.
예금은행에선 주담대가 감소 전환하고 기타대출 감소폭도 커지면서 1분기 중 가계대출이 12조1000억원 감소했다. 같은 기간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은 주담대와 기타대출 감소폭 확대로 9조7000억원 줄었다. 반면 기타금융기관 등에선 주담대 및 기타대출 모두 늘며 가계대출이 11조5000억원 증가했다.
1분기 말 판매신용 잔액은 114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여신전문금융회사를 중심으로 3조4000억원 줄어들며 9분기만에 감소 전환했다. 박창현 한은 금융통계팀장은 “가계신용은 높은 금리 수준 및 부진한 부동산 업황 등으로 가계대출 수요가 줄었고, 지난해 4분기 신용카드 이용액이 늘었던 계절적 요인이 올 1분기 들어 소멸되면서 판매신용도 감소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2분기 연속 이어진 가계 빚 감소세가 지속될지도 관심사다. 일단 시장에선 대출금리가 이미 고점을 찍었다는 분석이 많다. 변동형 주담대의 기준이 되는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지난해 11월 4.34%로 고점을 찍은 뒤 지난달 3.44%까지 하락했다. 오는 25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세 차례 연속 금리 동결도 유력하다.
주택매매 역시 바닥을 지나고 있다는 심리가 서서히 확산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부동산114에 따르면 월간 전국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올 1월까지 1만호대에 그쳤지만, 2월과 3월 각각 3만1000호, 3만5000호를 기록하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11일 발표한 ‘2023년 4월중 가계대출 동향(잠정)”에 따르면 지난달 중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은 2000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8월 이후 처음으로 증가 전환한 점이 눈에 띈다. 업권별로는 은행권에서 2조4000억원, 대출항목별로는 주담대가 1조9000억원 증가했다.
박창현 한은 팀장은 “4월 가계대출이 소폭이나마 증가 전환했기에 부채 축소 흐름은 다소 둔화되지 않을까 싶다”면서도 “대출금리 하락 및 부동산 거래 회복 흐름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