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광장] 불붙은 글로벌 '반도체 전쟁'…머뭇거리다간 주도권 잃는다

세계비즈 오현승 기자

 

 10월24일은 ‘제17회 반도체의 날’이다. 반도체의 날은 반도체 수출액이 100억 달러를 넘어선 1994년 10월 29일(10월 넷째 주 목요일)을 기념해 제정됐다. 2008년부터는 반도체가 중추 산업으로 발돋움한 걸 경축하고자 이즈음 매해 기념식을 연다.

 

 올해 1~9월 반도체 누적 수출액은 1024억 달러(한화 약 141조3400억원)다. 이 속도라면 올 한 해 기준으로 최대 수출 기록인 2022년(1292억 달러)도 뛰어넘을 형국이다. 하지만 그간 성과를 자축하기만은 어려워 보인다. 업황 둔화 가능성이 커지는 데다 글로벌 경쟁 강도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어서다.

 

 최근 주요국들은 반도체산업에서 주도권을 쥐고자 대대적으로 지원을 퍼붓고 있다. 보조금 지급 규모를 대폭 늘리고, 세제 혜택을 강화하는 등 그 방식도 다양하다. 반도체 인재를 육성하고 확보하고자 총력전을 펴기도 한다.

 

 미국은 반도체산업 유치 및 육성을 위해 ‘칩스법’을 2022년 제정했다. 자국 내 반도체 공장을 짓는 국내외 기업을 대상으로 보조금 제공 및 세제 지원 등으로 520억 달러 규모의 혜택을 제공하는 게 골자다. 직접 보조금, 연구 개발(R&D), 통신기술 안보, 인력 양성 및 확보 지원 등을 위해, 상무부, 국방부, 국무부 등 연방정부 차원에서 4개의 펀드를 설치해서 운용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屈起)’를 외치며 자국 반도체산업의 자생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특히 미국의 대(對) 중국 반도체 규제에 맞서 대규모 선행 투자를 지원하고자 반도체 투자기금을 조성한다. 지난 5월 발표한 ‘3기 반도체 투자기금’의 자본금 규모는 3440억 위안(한화 약 66조6000억원)에 이른다. 1기, 2기 기금 조성 때 1387억 위안, 2041억 위안을 투입한 것보다 그 규모가 크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중국 내 사회자본 투자를 촉진해 약 1조5000억 위안 규모의 자금이 반도체산업에 유입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엔 미국 정부가 중국에 첨단 반도체 수출을 금지하자, 중국은 자국 기업에 엔비디아의 H20칩 구매를 막고 자국 칩 사용을 독려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국산 AI칩 경쟁력을 높여 기술 자립을 이루려는 취지다.

 

 일본도 ‘반도체 산업 부활’을 외치며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에 나섰다. 보조금 규모만도 2조엔(한화 약 18조1000억원)에 이른다. 일본은 경제산업성(METI) 산하 신에너지·산업기술 종합개발기구(NEDO)에서 별도의 ‘반도체 지정 펀드’를 통해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한다. 압도적인 글로벌 파운더리 1위 기업 TSMC를 보유한 대만은 지난해 1월 ‘산업혁신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반도체 등 첨단 기업들의 연구개발(R&D) 비용에 대해 25%를 공제하는 게 골자다. 

 

 반도체 분야에서 총성 없는 전쟁이 한창인데 한국은 팔짱만 끼고 있다. 제21대 국회에선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시설 투자에 세금의 15~25%를 돌려주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K칩스법’을 발의했지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제22대 국회에서 반도체 지원을 강화하는 법안이 여럿 발의됐지만 좀처럼 논의에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보조금 직접 지원을 두고 이견이 있다면 이는 지원 수혜기업이 고용, 투자를 늘려 이익을 사회와 공유하는 방식으로 극복방안을 고민하면 될 일이다.

 

 반도체산업은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반도체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10.2%에서 최근 20%를 넘어섰다. 반도체 수출의 증감에 따라 경상수지마저 크게 요동칠 정도다. 반도체산업의 전(全) 산업 대비 투자 비중은 30%에 육박하고, 제조업 생산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자동차 다음으로 높다.

 

 한때 전 세계 최대 종합반도체 회사였던 인텔이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1980년대 초 세계 반도체산업을 제패했던 일본의 영광도 채 20년에 그쳤다. 한국이 아직 D램과 낸드플래시 같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앞서있다고 방심했다간 영영 첨단 산업의 경쟁력을 잃을지 모른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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