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강소기업을 가다] 러너 마음 뺏은 러너블 “달리기는 ‘운동’이 아니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까지 삼중고로 산업계가 신음하고 있다. 내수와 수출의 불확실성이 짙어지고 투자시장의 자금도 얼어붙었다. 하지만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나가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유례없는 위기에 주눅 들기보다 뚝심 있게 기술을 혁신하며 새로운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그들이다.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가 빛나는 아이디어로 주목받는 알짜배기 기업들을 만나본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 출범한 러닝 플랫폼 ‘러너블’은 국내 마라톤 대회의 ‘IP화’로 시장의 변혁을 이끌며 오늘날 뜨거운 러닝 붐에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현재 70개가 넘는 브랜드 및 해외 관광청과 협업을 펼치는 등 3년 반 만에 러너블을 마켓리더로 키운 류영호 대표는 최근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와 인터뷰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후 러닝의 매력에 빠졌다. 요즘도 최소 주 3회는 조깅을 한다”고 말했다. 김용학 기자

 

 러너스하이(Runner’s High). 1979년 미국의 신경과학자이자 정신과 의사 아놀드 J 멘델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30분 이상 뛰었을 때 고통 뒤 밀려오는 행복감을 의미한다. 그 정도가 헤로인이나 모르핀을 투약했을 때와 비슷하다고 하니 달리기는 그야말로 ‘국가가 허락한 마약’인 셈이다.

 

 러너스하이에 ‘중독’된 국내 러너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아직 통용되는 자료는 없지만 최대 1000만 명에 이른다는 말도 있다.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가 500만~600만 명으로, 이는 골프 인구와 비슷하다. 함께 모여서 달리는 러닝크루가 폭발적으로 늘고 매스컴의 화두가 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아직 국내에서 달리기 인기가 이 정도로 뜨거워지기 전, 그것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야외활동에 브레이크가 걸린 2021년 러닝의 미래를 읽고 사업을 시작한 기업이 있다. 2월 현재 가입회원 50만 명, 마켓리더를 자부하는 올인원 러닝 플랫폼 ‘러너블(Runable)’이다. 최근 만난 류영호 러너블 대표는 달리기는 ‘운동’이 아니라고 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던 유명한 카피처럼 말이다.

 

 ◆달리기는 기회다

 

 러너블은 2021년 8월 출범했다. 당시 기승을 부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20만 명을 돌파한 시기이자 불과 한 달 전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적용됐던 상황. 업체 및 시설의 운영시간이 제한되며 사실상 야외활동을 거의 할 수 없는 때였다. 바로 그 시기에 대표적 야외활동인 러닝 관련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류 대표는 “모두가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할 때 기회가 있는 법이다. 코로나는 시간이 지나면 소멸할 것이라 판단했고, 러닝의 성장성과 확장성, 미래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며 “코로나로 인해 시장에 경쟁자가 없었다. 그때부터 시작을 했기 때문에 팬데믹 이후 드라이브를 걸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MICE, 엔터테인먼트, 클래식, 아트, 스포츠, 축제 등 문화 사업에 주로 종사한 류 대표는 우리나라도 국민소득이 증가하면서 다른 선진국처럼 러닝이 단순 운동을 넘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는 디지털 전환이라는 시대의 화두에 맞춰 온라인 러닝 플랫폼을 구상했고 준비 과정을 거쳐 러너블 애플리케이션을 세상에 내놓았다.

 

류영호 러너블 대표가 휴대전화 속 러너블 앱을 실행시키며 웃어 보이고 있다. 김용학 기자

 

 ◆달리기는 여정이다

 

 지난해 11월 리뉴얼을 마친 러너블 앱/웹은 국내 모든 마라톤 대회의 검색과 참가신청부터 해당 대회에서 얻은 공식 기록을 남길 수 있으며, 스토어에서 관련 굿즈를 구매할 수 있다. 아울러 매거진을 통해 러닝 정보를 탐색할 수 있고, 커뮤니티도 있어 러너 간 교류 역시 가능하다.

 

 러너블이 출범하며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러닝 대회의 ‘IP화’였다. IP는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s)을 뜻하는 것으로, 이를 보유하면 해당 대회와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독점적으로 운영하고 활용할 수 있다. 대회 참가티켓과 관련 상품 판매, 타 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수익을 얻고, 대회에 나설 참가자들의 준비 과정 자체를 활용하는 것이다.

 

 류 대표는 “러너블이 있기 전, 국내 모든 마라톤 대회는 당일 하루만 소비되는 단순 이벤트였다. 사실 러닝 대회만 그랬던 게 아니다. 문화사업을 하면서 너무 많은 콘텐츠가 단발성으로 휘발되는 모습을 봤다”며 “행사는 하루지만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은 더 길다. IP는 곧 대회를 향한 러너의 여정을 사업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너블은 그간 국내 최대 규모로 키워냈고 다수의 신규 대회 개발을 통해 국내에서 가장 많은 러닝 IP를 보유하고 있다. 올해도 주요 마라톤 및 러닝 대회를 주최∙주관하며 전국의 러너들과 만날 예정이다.

 

 ◆달리기는 쉽지만 어렵다

 

 달리기는 진입 허들이 낮다. 따로 배우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다. 반드시 필요한 도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류 대표도 “달리기는 어렵지 않다. 그런데 딱 하나 정말 어려운 게 있다. ‘마음먹기’다. 뛰자고 마음만 먹으면 쉽게 뛸 수 있는데 마음을 먹는 게 참 힘들다”며 “사람들이 쉽고 재밌게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러너블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러너블의 다양한 러닝 이벤트는 ‘마음먹기 어려운 이’들을 신세계로 끌어들이는 요인이 됐다. 업체 혹은 지자체와 손잡고 에버랜드의 스피드웨이 레이싱 트랙에서 달리기, 서울 잠수교에서의 계주, 강릉 경포 아리바우길에서 달리기, K리그(프로축구) 응원팀 유니폼을 입고 석촌호수 러닝, 추격전 영화 ‘탈주’ 시사회 관람 후 야간에 폐장한 스타필드 코엑스 내부 달리기 등을 진행하며 달리기의 매력을 알렸다.

 

지난해 7월 러너블와 프로축구연맹이 손잡고 기획한 ‘저지 입고 뛰어’ 러닝 클래스에 나선 참가자들이 서울 석촌호수를 달리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이렇게 러닝에 빠져 달리는 횟수가 늘면서 점차 눈에 들어오는 것이 ‘기록’이다. 어제의 나를 오늘의 내가 넘고 싶은 것이다. 러너블은 국내 업체 중 유일하게 대회기록 아카이빙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러너블이 2023년 출범한 ‘대학러닝리그’는 전국 대학생들이 각자 학교의 명예를 걸고 기록 경쟁을 펼치는 장으로 자리매김 했다.

 

 ◆달리기는 글로벌이다

 

 러너블은 러닝과 상품∙서비스의 결합에 만족하지 않고 달리기에 여행을 접목했다. 류 대표는 “트레일(정비된 도로가 아닌 자연의 흙길, 숲길, 해변 등을 달리는 스포츠)이 떠오르면서 러닝이 여행의 테마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렇게 기획한 결합상품이 시장 트렌드와 잘 맞아떨어졌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다양한 런트립(Run Trip) 상품을 파는 곳이 러너블이다. 앞으로 더 특색 있는 상품이 나올 것”이라고 자부했다.

 

 2023년 하반기부터는 해외도 바라보고 있다. 캐나다, 두바이, 북마리아나제도의 각 관광청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지난해 12월 손잡은 북마리아나제도의 경우 현지 사이판 마라톤 대회와도 협업하기로 했다. 다음달 열리는 사이판 마라톤과 연계한 런트립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 중이다. 그밖에 밴쿠버∙오사카∙다낭∙파리∙울란바토르∙훗카이도 등 다양한 도시에서 열리는 해외 마라톤 투어를 준비하고 있다.

 

 류 대표는 “특수목적관광(SIT)이 떠오르면서 러닝을 하기 위해서 해외를 간다는 사람들이 늘어난 시대”라며 “본격적으로 해외 사업을 시작한 지 1년 반 만에 국내 업체 중 가장 많은 해외 상품을 보유했다. 메이저 여행사에서 러브콜이 이어지는 중”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류영호 러너블 대표(오른쪽)가 크리스 컨셉시온 마리아나관광청장이 업무협약식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마리아나관광청 제공

 

 ◆달리기는 당신이다

 

 러너블 출범 전까지 정기적으로 달린 적이 없었다는 류 대표는 이후 ‘러닝 예찬자’가 됐다. 그는 “달려보니 너무 좋더라. 두 달 만에 6㎏ 감량을 했다. 기저질환 수치도 줄었다”며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요즘에는 ‘슬로깅(Slow Jogging)’으로 대신하는데 정말 ‘강추’다. 주 3회는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목표 역시 이 좋은 러닝을 전 연령의 국민이 즐기는 것이다. 류 대표는 “올해 하반기부터 메이저 마라톤 대회가 부담스러운 러너를 위한 ‘가성비’ 퍼블릭 대회를 운영할 계획”이라며 “아울러 80세 이상 어르신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입문자가 더 흥미를 느낄 특별한 선물 이벤트를 마련하는 등 저변 확대에 신경을 쓰겠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류 대표는 “겨울은 러닝 비수기인 데도 지난해 말 리뉴얼 이후 앱 ‘MAU(월간 활성 사용자)’가 기존 수치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면서 “러너블의 성장에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낀다. 러닝이 지역경제 활성화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여러 지자체와 손잡고 사업을 추진 중이고 올해 중으로 성과를 내보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케이 러닝(K-running)’을 전 세계에 전파한다는 미션도 이어갈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러닝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로드 스포츠 플랫폼으로 확장도 꿈꾸고 있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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