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정부가 알래스카 LNG 딜레마에 빠졌다. 알래스카 주에서 대규모 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미국이 한국 정부와 기업에 동참을 제안한 상황으로, 전형적인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사업이라 부담이 크다. 여기에 상대가 관세라는 무기를 쥐고 있어 사실상 권유가 아닌 협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31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최근 방한한 마이크 던리비 미국 알래스카 주지사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정부 인사와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 포스코∙SK∙한화그룹 등 기업 고위급 관계자들과 만나 LNG 프로젝트 참여 등을 의논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각별한 관심을 쏟는 것으로 알려진 해당 프로젝트는 1300㎞ 가스 파이프(송유관)를 건설하고 액화 및 저장 설비를 갖춰 알래스카 북부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남부 항만에서 수출한다는 것이 골자다. 미국은 LNG 수요가 많은 한국과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의 프로젝트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던리비 주지사는 이번 방한 중 국내외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국이 가스(LNG)를 구매하지 않거나 구매 의사를 명확히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역적자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뜻은 명확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추진하는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동참하라, 그렇지 않으면 관세 등에서 특혜를 받을 수 없거나 불이익을 있을 거란 얘기다. 던리비 주지사는 1박2일 방한 일정 중 투자의향서 체결 등 실질적 협력 약속을 기대한다고 밝혔지만 구체적 성과는 없이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와 기업은 주저할 수밖에 없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예상 사업비가 최소 440억달러(약 64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우리나라 1년 예산의 10분의 1에 해당한다. 혹한의 환경에서 공사 기간이 늘어날 수 있고, 환경보호 이슈가 얽힌 점을 고려하면 사업비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실제 2010년대 초반부터 엑손모빌, BP 등 글로벌 에너지 기업과 중국 등이 알래스카로 몰려들었지만 낮은 수익성과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철수한 바 있다. 글로벌 탄소중립 목표와 지정학적 변수로 인해 2030년 이후 LNG 수급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운 점도 리스크다.
그렇다고 미국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기도 어렵다. 던리비 주지사가 관세를 언급하며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낸 이상 유야무야 넘길 수 없는 것이다. 아직 정부에서 공식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오는 3일 이후 미국의 상호관세 조치의 윤곽이 드러나고 대미 협상이 본격화하면 협상 카드의 하나로 활용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제는 국가 리더십의 부재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이후 국정 리더십 공백이 길어진 가운데, 수십조 원 규모의 전략적 해외 투자를 추진할 결정권과 실행력이 없거나 현저히 떨어지는 실정이다. 현재로선 한국과 똑같은 제안을 받은 일본의 결정을 따라가는 것이 최선의 방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알래스카 LNG 사업에 뛰어들자니 리스크가 너무 크고, 거절하자니 미국으로부터 관세 협상 등에서 피해를 볼까 걱정이 되는 상황”이라며 “정부와 에너지 업계의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