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이번 관세전쟁 선포에 좀처럼 대응책 마련이 쉽지 않다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극단적 행보는 한국과 미국이 맺은 자유무역협정(FTA)마저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조처라는 이유에서다. 이대로라면 전 세계 경제가 1930년대 대공황 수준으로 회귀할 거란 비관론도 나온다.
3일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상호관세를 전격 발표했다. 한국엔 26%의 상호관세율을 매겼다. 미국은 주로 자국이 무역 적자를 보고 있는 국가를 위주로 높은 상호관세율을 부과했다.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폭이 큰 건 대기업들 벤더사들의 미국향 수출 물량이 큰 점도 영향이 있지만 이러한 점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번 관세 정책을 두고 국내 전문가들은 대체로 관세율이 높아도 경쟁국과 비교하면 최악은 피했다고 평가했다. 또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 및 기업이 미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적극 어필해 관세율 조정 가능성을 엿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이 요구하는 부분을 일부 수용하되 한국이 얻어낼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얻어내는 것도 한 중요한 대응 전략 중 하나다. 미국 현지에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게 관세 폭탄을 피할 현실적인 대책이라는 분석도 있다. 통상 분야의 4인의 전문가에게 직접 이번 트럼프발 관세충격 대응책을 들어봤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관세율 조정 협상 나서야”
장사꾼 마인드인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내줄 건 내주고 취할 건 취하는 전략을 펼치라는 조언이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은 미국 정부가 불만을 품고 있는 소고기 수입 월령 30개월 제한 등을 관세율 조정을 위한 카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한국은 미국의 주요 무역파트너로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처럼 상호관세 명단에서 빠질 수 있는 여지가 있을지 적극적으로 타진해봐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날 백악관은 USMCA을 맺고 있는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해 USMCA의 적용을 받는 품목에 한해선 향후 관세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히 멕시코와 캐나다는 미국과 관세 부과문제로 협상하면서 국경 이민자 통제 등에 자국 국경경비대를 늘리겠다는 당근과 보복 관세 부과 계획 등의 채찍을 동시에 사용해 협상력을 높여 이 같은 결과를 얻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다양한 대응책을 모색한다고 하더라도 탄핵 정국 등으로 고위급 외교 채널이 사실상 마비된 한국이 당분간 미국 정부를 상대하기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도 진단했다. 황 교수는 “4일에 탄핵심판 선고가 있지만 향후 대통령 선거까지 국정공백이 장기화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면서 “정부가 실무대표단을 미국에 파견하고 그룹 총수가 미국까지 갔지만, 미국 정부는 한국을 카운터 파트너로서 인정을 안 해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송영관 KDI 선임연구위윈 “美 소고기∙‘구글맵’ 주고…韓 요구 사항 관철시켜야”
한국이 미국에 과도한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는 미국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해명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한국이 50%의 실효 관세를 매기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한미FTA를 통해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면서 “환율관찰국 지정 우려에 대해선 원∙달러 환율이 1500원선까지 오르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측의 요구를 일정 부분 들어주되 한국이 원하는 관세율 인하 조처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도 역설했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한국이 지도 데이터 반출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우리가 원하는 관세율 인하 등을 얻기 위해서라면) 수용할 만한 부분”이라면서 “30개월 이상 소고기가 위험하다는 주장엔 과학적 근거가 희박하니 이 점도 미국 측의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전국소고기협회는 중국과 일본, 대만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서 월령 제한을 이미 해제했다며 한국도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미국 정부를 통해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희망 섞인 해결책도 제시했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이어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등 전 세계가 관세에 따른 피해가 예상된다는 점”이라면서 “미국을 직접 상대하긴 어려우니 유럽연합(EU) 등과 공조해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민환 인하대 경영대학원장 “현지 생산기지 구축으로 관세 회피해야”
관세폭탄을 피하기 위해선 일단 미국 내 생산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이 대규모 생산기지를 미국 내 구축하기로 한 전략이 대표적이다. 이민환 인하대학교 경영대학원장은 “미국 외 다른 지역으로 수출 경로를 다변화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겠으나 갑작스럽게 미국 만큼 큰 시장을 발굴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결국 미국 내 생산품에 대해선 관세가 없으니 단기적으로는 현지에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게 관세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다만 1차∙2차 벤더까지 모두 미국으로 나가긴 어려울 텐데 이 경우 뒤따르는 관세 부담은 여전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이어 “(고관세 정책이) 미국 경제 및 미국인들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 정책이 바뀔 가능성도 있어 이 부분은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구나 현대차그룹처럼 거대한 기업이 아니고서는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란 언감생심이다. 결국 관세 부과로 소비자 물가가 폭등하는 등의 상황과 관련해 미국 내 여론에 호소하는 등 다각도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불행 중 다행… 정부, FTA 취지 강조해야”
이번 트럼프발 관세가 한국 입장에서 그나마 최악은 피했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및 부품 등 대미 수출 주력 품목은 상호관세가 중복으로 적용되지 않도록 예외 처리됐다. 25%+26%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했다. 또한 관세가 한국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고 무역 경쟁국인 일본(24%), 대만(32%), 중국(34%)과 유사하거나 낮은 수준이라는 점에서도 최악은 면했다고 평가했다.
장 연구원장은 “향후 정부 간 협상이 중요할 것”이라며 “미국 측에 대미 무역흑자 축소 노력, 한미 FTA 체결 취지를 강조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번 상호관세 정책은 자유로운 무역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2012년부터 적용 중인 한미 FTA의 취지와 정면 충돌한다는 점을 협상 시 지적해야 한다는 의미다.
아울러 장 연구원장은 “기업 차원에서는 단기적으로는 국가별 상호관세율 차이를 고려한 공급망 조정 전략이 중요하다”며 “장기적으로는 USMCA 규정을 준수하는 품목에 대해서는 관세 면제가 계속 유지되므로 멕시코∙캐나다 등 북미 지역 투자 확대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이날 마침 한국경제인협회 주최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부과에 대한 대응책을 주제로 세미나가 진행됐다. 여기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이번 상호관세로 인한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입을 모아 강조했다. 중장기적인 흐름에 집중하고 이를 기회로 삼아 민관 협력에 나서야 한다는 대응책도 제시했다. 또 공통 분모를 가진 한국과 중국, 일본이 한중일 FTA를 재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오현승∙박재림 기자 hs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