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구사일생으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중복 부과를 피한 국내 자동차 업계는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다만 25%의 품목별 관세로 인해 타격은 불가피하다. 반도체도 상호관세 미적용 대상으로 거론된 데다 품목별 관세 부과만 예정돼 있을뿐 구체적 수치가 나온 상태가 아니지만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후속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관세 충격에…현대차∙기아 단기적 영업익 감소 예상
미국은 한국 자동차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지난해 한국 자동차 생산 대수 413만대 가운데 수출 대수는 278만대(67%)였다. 특히 대미 수출 대수는 143만대(현대차∙기아 101만대, 한국지엠 41만대)로 전체 생산의 35%, 전체 수출의 51%에 해당한다. 또한 미국 자동차 수출액은 347억4400만 달러(약 50조원)에 달했다.
상호관세가 부과되진 않아도 국내 자동차 수출에는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는 미국이 수입산 자동차에 대해 25% 품목별 관세를 적용하면서 한국 자동차수출액은 지난해보다 63억5778만 달러(약 9조2000억원)정도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업계에서는 한국산 자동차에 약 1225만원 가량의 관세가 매겨질 것으로 보이며 이에 가격 인상에 대한 예측이 나온 바 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현지 가격 인상에 대해 선을 그었다. 가격적인 메리트가 사라지면 현지 시장의 소비자들이 주머니를 열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25%의 관세에 대한 부담은 현대차그룹이 모두 짊어지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날 서울 모빌리티쇼에서 호세 무뇨스 현대차그룹 사장은 “관세 발표를 봤고 그 영향을 평가하고 있다”면서도 “현재로서는 미국 시장에서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 시장은 당사에게 중요한 시장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고 큰 의지를 갖고 있다. 그래서 단기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단기적으로는 분명 손해…장기적으로는?
단기적으로 충격파로 작용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승산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최신 스마트팩토리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건설하며, 미국 내 생산 기반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현지 생산 차량에 대해서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당장의 관세 부과에 가격 동결로 손해를 감수하면서 현지 소비자 최우선 정책으로 시장 점유율을 늘려나가면서 향후 현지 생산을 통해 손해를 상쇄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미국 현지 세군데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연 생산 규모가 총 100만대에 이른다. 수년내 HMGMA가 본격 가동하면 연산 규모가 50만대 더 늘어난다. KB증권은 50만대 증가할 경우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관세가 없던 시절보다 오히려 5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아 역시 내년부터 HMGMA 생산을 시작하면서 영업이익 차이가 종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예측도 있다.
국내 수출 효자인 한국지엠은 이야기가 다르다. 북미 수출량이 전체 생산의 84%에 달하기 때문이다. 트레일블레이저와 트랙스 등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로 현지 가성비 모델을 판매하는 가운데 관세로 가격이 오르면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헥터 비자레알 한국지엠 사장은 최근 임직원과의 면담에서 “회사 측은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해 왔고, 한국 사업은 계속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 마냥 안도할 순 없는 분위기
백악관은 이날 상호관세 미적용 대상으로 품목별 관세 부과 대상 중 이미 관세를 부과하게 된 철강, 자동차 외에 구리∙의약품∙반도체∙목재 등도 거론했다. 반도체 업계는 이미 품목별 관세 부과를 예고한 만큼 이번 상호관세 제외에 마냥 안도할 수만은 없다는 분위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있는 상황”이라며 “반도체의 가치사슬이 복잡한 데다 미국 빅테크가 첨단산업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반도체와 같은 부품에 관세를 매기는지 득실을 따져봐야 하니 미국 정부도 고민하고 있는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차용호 LS증권 연구원은 “이날 상호관세 발표에서 반도체는 제외 품목으로 지정됐지만 정보기술 기기에 대한 관세는 면제되지 않았다”며 “대부분의 세트 조립이 중국, 인도, 베트남, 멕시코 등과 같은 인건비가 저렴한 국가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결국 수요 측면에서는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공식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이번 발표 내용을 면밀히 따져보며 향후 있을 품목별 관세 부과 등에 대한 대응책을 다각도로 논의하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대미 반도체 투자에 지급되는 보조금의 재협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여전히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전임 행정부보다 훨씬 나은 합의를 협상해 흥정에 따른 이득을 납세자에 가져다주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