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광장] APEC 잔칫상 들러리 될까 두렵다

 

세계는 지금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패권 우위 경쟁이 치열하다.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국은 주최국으로서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가 우리에게 쏠린 그 순간 우리는 진정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무대의 빛이 환할수록 그 뒤편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외교의 손익 계산서는 더욱 냉정하다.

 

이번 회의의 중심축에는 미국과 중국이 있다. 두 나라는 다시 교섭 테이블로 돌아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이 APEC 기간 중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히며 새로운 미·중 담판의 서막을 예고했다. 희토류,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기술 공급망을 둘러싼 냉전 속에서 회담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님을 의미한다.

 

언뜻 평화의 대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략적 계산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트럼프는 중국의 기술 굴기와 경제 팽창을 견제하려 하고 시진핑은 미국의 경제적 압박 속에서도 영향력을 유지하려 한다. 두 거인의 회담은 결국 경쟁에 대한 진심을 내놓는 장이다. 그 가운데 한국은 그 무대를 열어준 나라로서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느냐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이 진정한 외교적 성과를 거두려면 이번 회담을 산업 외교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단순히 선언문과 사진으로 끝나는 행사가 아니라 반도체와 배터리, 희토류 등 전략 산업에서 한국이 ‘공급망의 교량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실질적 협상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외교를 통해 산업의 실리를 얻어야 비로소 한국은 이 무대의 주인공이 된다.

 

워싱턴과 평양 사이에서는 또 다른 움직임이 감지된다. 미국과 북한의 물밑접촉이 시작됐다. 양측은 표면적으로는 대화 재개의 뜻을 밝히고 있으나 그 속내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미국은 핵 동결과 미사일 실험 중단을 조건으로 제재 완화 및 인도적 지원을 논의하는 반면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의 사실상 인정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접촉은 아직 문서로 구체화하지 않은 상태다. 한국은 대화의 중개자 혹은 조정자로 언급되지만 협상의 설계자나 주도권을 쥔 당사자로 보기는 어렵다. 이제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단순한 중재를 넘어 한반도 평화체제의 공동 설계자로 나서는 것이다. 비핵화 외에도 평화체제 구축과 경제적 상응 조치, 그리고 북한의 제한적 개방을 포괄하는 새로운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먼저 청사진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이 시점에서 일본의 변화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등장은 일본 외교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꿀 가능성을 품고 있다. 초강경 보수 성향의 그는 미·일 동맹 강화를 외교의 중심에 두고 중국 견제와 인도·태평양 전략의 주도권 확보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일본이 이렇게 안보와 경제 두 축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세우는 동안 한국이 단지 주변국으로 머무를 수는 없다.

 

우리는 한미일 삼각 협력 속에서 단순히 균형을 맞추는 조력자가 아니라 주도적 파트너로 자리 잡아야 한다. 역사나 감정의 굴레에만 매달리기보다 공급망과 방위산업, 기술협력 등 현실적 이익이 걸린 분야에서 한국의 입지를 강화해야 한다.

 

결국 지금 한국 외교의 과제는 명확하다. 행사가 끝난 이후 실질적 이익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외교를 통해 산업적 이익을 끌어오고 산업적 경쟁력을 통해 외교의 영향력을 확장해야 한다. 외교는 더는 사진찍기나 선언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무역, 안보, 에너지의 실질적 교환이 이루어지는 거래의 기술이다.

 

한국이 지금 이 국제 질서의 격랑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단순히 자리만 빌려주는 나라가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내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손에 쥐어질 손익 계산서가 어떤 결과일지를 냉정히 확인해야 한다. 한국은 이번 기회를 통해 외교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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