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경주 APEC] 전격 합의한 관세협상 ‘선방’… 안보·평화도 공감대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주국립박물관에서 한미 정상회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관세 협상의 전격 합의를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한미 정부는 3500억 달러의 대미 금융투자를 현금 2000억 달러와 조선업 협력 1500억 달러로 구성하되, 현금투자의 연간 한도를 200억 달러로 제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관세협상 세부 내용에 합의했다.

 

유사한 구조의 협상을 한 일본(현금투자 5500억 달러)과 비교하면 총 현금 투자액이 약 36%에 불과하고, 연간 투자 상한까지 설정하는 등 한국 경제규모에 맞춰 안전장치를 마련했다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브리핑에서 “원리금이 보장되는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만 추진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양해각서에 명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전액 선불 등을 언급하며 한국을 압박한 것에 비하면 한국의 입장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볼 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여러 차례 협상의 핵심으로 언급한 ‘상업적 합리성’이 양해각서 문구에 들어갔다는 점도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관세협상 자체가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관세 협박’에 떠밀려 이뤄진 만큼 이를 성공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피해를 최소화하고 경쟁자들과 동등한 출발선을 보장받는 ‘선방’으로 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MOU에 서명해도 실제 자동차 등 관세 인하가 이뤄지려면 대미 투자펀드와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야 한다. 법안만 제출되면 그달의 1일로 소급해서 관세가 인하된다지만, 국회 논의 상황에 따라 변수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향후 야당의 협조를 얻어내는 것도 이 대통령의 과제가 될 전망이다.

 

사실 앞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관세 협상의 최종 타결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압도적이었다. 이에 김 실장은 “어제 저녁에도 전망이 밝지 않았고, 당일 급진전됐다”고 말했다. 협상 장기화도 불사하겠다는 자세로 끝까지 원칙을 관철한 끝에 아시아 순방에서 결과물이 필요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양보를 끌어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한미 협상의 다른 축인 안보와 관련해서도 상당 부분 합의가 이뤄졌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브리핑에서 “동맹 현대화를 위한 여러 전략적 현안에 대해 미국 측의 적극적 협조 의사를 확인했다”며 “원자력 등 핵심 전략산업 분야에서 더 큰 협력의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회담 중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결단해달라”고 요청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공감하며 후속 협의를 하자고 화답했다. 한미동맹 현대화라는 변화를 수용하면서 한국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선제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실리를 챙기는 시도를 했다고 평가할 만한 부분이다.

 

다만 이 대통령은 핵추진 잠수함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중국 쪽 잠수함’의 추적을 언급했는데, 일각에서는 향후 중국과의 정상회담 등에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통령실은 “이 표현은 특정 국가의 잠수함을 지칭한 것이 아니다”라며 “단순히 중국 방향의 우리 해역 인근에서 출몰하는 잠수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관심을 끈 또 하나의 이슈는 북미 정상 간 회동의 성사 여부였다. 이날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회동 불발을 공식화하면서 북미 정상간 만남은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다만 양 정상 모두 북미 대화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는 점은 재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회담을 요청하고 언제든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씀하신 자체만으로도 한반도에 상당한 평화의 온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가진 큰 역량으로 전 세계와 한반도에 평화를 만들어주시면,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충실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도 “한반도에서 여러분(남과 북)이 공식적으로 전쟁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겠다”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적극적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 대통령의 ‘페이스메이커론’에 트럼프 대통령이 호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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