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독일선 형사처벌·경찰신고”…‘5·18 조롱’ 한국선 교사들이 민원 벌벌

배재고 야구부를 비판하는 근조 화환이 2일 서울 강동구 배재고등학교 앞에 놓여 있다. 사진=뉴시스
배재고 야구부를 비판하는 근조 화환이 2일 서울 강동구 배재고등학교 앞에 놓여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 전국 고교 야구대회에서 발생한 배재고등학교 학생들의 광주제일고등학교 향한 ‘5·18 폄훼 조롱 구호’ 사건으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중징계를 내린 가운데, 청소년들 사이에 만연한 역사 왜곡과 혐오 표현을 근절하기 위해 실효성 있는 교육 및 제도적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선진국들이 학교 내 혐오 표현에 형사처벌 등 강경 대응하는 것과 달리, 국내 교육 현장은 학부모 민원 등의 우려로 적극적인 지도가 외면받고 있다는 비판이다.

 

◆ 5·18 조롱 구호에 ‘6개월 출전정지’ 중징계

4일 교육계와 체육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배재고 일부 학생 선수들이 상대 팀인 광주제일고 더그아웃을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구호를 반복해 외쳤다.

 

해당 구호는 최근 스타벅스 코리아의 매장 이벤트 과정에서 불거진 ‘5·18 탱크데이’ 논란을 차용한 것으로 특정 지역과 역사를 비하·조롱하려는 의도로 해석돼 파장이 일었다. 이에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지난 1일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고 배재고 야구부에 ‘출전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 “재미 삼아, 남들 쓰니까”…교실 침투한 역사 왜곡 밈(Meme)

이번 사태는 일부 학생의 일탈을 넘어 청소년들 사이에 역사 왜곡이 하나의 ‘놀이’나 ‘밈(meme)’으로 소비되고 있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청소년 인식 조사에 따르면, 학교에서 혐오 표현을 접했다고 답한 청소년은 57%에 달했으며 이 중 24%는 직접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사용 이유로는 ‘재미와 농담 삼아(54%)’, ‘남들이 쓰길래 따라 썼다(58%)’는 답변이 과반을 차지해 문제의식 없이 혐오를 수용하는 경향이 짙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교육 현장의 수치도 이를 뒷받침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교사 1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8%가 “수업 중 학생이 역사를 왜곡하거나 혐오 발언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아이들끼리 전직 대통령을 언급하며 특정 서거일이나 단어, 숫자를 유희화해 웃음거리로 소비하곤 한다”고 전했다.

 

 

◆ 해외 주요국 ‘경찰 공조·형사처벌’…한국은 “민원 무서워 방관”

교육정책네트워크 정보센터의 해외 교육 동향 자료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들은 학교 내 혐오 표현 및 역사 왜곡 행위에 엄정 대처하고 있다.

 

독일 바이에른주의 한 김나지움에서는 학급 채팅방에 나치 문양과 유대인 학살 가스실 관련 용어가 등장하자, 학교장이 즉각 경찰과 공조해 수사를 의뢰했다. 해당 학생들은 법정 금지 문양 사용 및 특정 민족 증오 표현 혐의로 기소됐다. 또한 독일 각 주 정부는 인종·성별·종교적 차별에 맞서는 학습 목표를 정규 교육 과정에 반영하고 있다.

 

영국 역시 혐오 표현을 학교폭력 유형으로 분류해 경찰 신고를 권고하며, 프랑스는 차별적·폭력적 행위가 형법상 처벌 대상임을 명시하고 즉각적인 신고 체계를 가동 중이다. 미국 또한 연방 및 주 교육당국 차원에서 혐오 표현을 언어적 학교폭력으로 규정하고 국가 수준의 통계로 관리하고 있다.

 

반면 국내 교육 현장에서는 교사들이 적극적인 생활지도에 나서기 어려운 실정이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이 실시한 조사에서 사회과 수업 중 학부모 민원이 제기될까 부담을 느낀다는 응답은 5점 만점에 평균 4.41점에 달했다. 교사들을 향해 “빨갱이다”, “5·18은 폭동이다”라는 식의 극단적인 학부모 민원과 폭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 “일상적 민주시민교육 및 제도 정비 시급”

전문가들과 교원단체들은 사후 약방문식 대응을 넘어 학교 안에서 상시적인 민주시민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교사노조는 “혐오 표현에 대한 교육은 학교 안에서 일상적으로, 생활지도와 수업 상황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교조 역시 성명을 통해 “학생들이 혐오와 배제가 아닌 존중과 공존의 가치를 배울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책임 있는 교육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역사 왜곡과 민주주의 조롱 확산을 막기 위해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등 국회 차원의 제도적 장치 정비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희선 온라인 기자 ahrfus3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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