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포스트코로나, ‘언택트 르네상스’가 온다

김형석 팀윙크 대표

1350년, 엄청난 전염력을 가진 흑사병이 유럽을 덮쳤다. 당시 유럽 인구의 30%가 희생됐고, 사람들은 흑사병을 이기게 해 달라고 신에게 기도했다. 하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신에게 외면받았다고 느꼈다. 인구가 줄어들자 인건비는 증가했고, 노동 집약적인 농경 사회에서 자본 집약적인 시장경제 체제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중세 봉건사회는 점차 붕괴하기 시작했다. 신에게 의지하던 사회에서 인간 중심 사회로의 변화 또한 가속화되었다. 바야흐로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이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수많은 과학자와 자본가들이 등장했다. 농사에서 기술로 눈을 돌린 자본가들은 여러 가지 기술에 투자했고, 그중 전쟁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흑사병이 창궐한 유럽을 떠나 신대륙이나 식민지를 찾아 나섰다. 발전된 전쟁 기술로 식민지 쟁탈을 위한 전쟁이 촉진됐고, 결국 식민 제국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역사 교과서 속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는 흑사병은 그렇게 세계 변화의 기폭제가 됐다.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 1년이 지났다. 일시적인 유행병으로 끝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코로나19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의 삶을 크게 변화시켰다. 유례없는 팬데믹으로 인해 마스크 착용은 일상화됐고, 사람들 간의 만남은 극도로 위축됐다. 매년 즐기던 해외여행은 더는 갈 수 없고, 화상수업과 재택근무, 화상회의가 일상이다. 

 

아이들은 알파 세대로 진화하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가상 교실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난다. 알파 세대는 그 어떤 세대보다 시각과 청각이 발달한 세대이다. 복잡하고 깊이 있는 사고보다 감각적이고 즉각적인 영상에 반응한다. 이러한 알파 세대의 수업이 끝나면 옆방에 앉아서 회의하는 아빠,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어색한 표정으로 회의를 이끄는 X세대 부장과 자신의 이견을 피력하는 MZ세대 대리는 서로 존대하며 현안 이슈를 해결해 나간다. 업무 시작 전에는 오늘의 할 일을 브리핑하고, 업무를 마친 후에는 오늘 진행한 일들의 성과를 회고한다. 상사의 눈치를 보며 자리를 지키는 것이 성실함의 척도이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퇴근 후 삼겹살과 소주로 끈끈하게 연결된 관계의 시대가 강제 종료되고, 지표화된 성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성과의 시대가 시작됐다. 

 

산업 분야에서도 변화는 쉽게 감지할 수 있다. 골목 상권은 침체됐지만, 배달 시장과 이커머스는 급성장했다. 금융 분야 역시 그 변화의 진폭이 큰 편이었다. 대출을 받을 때도, 계좌 업무를 할 때도 더는 은행 창구에 갈 필요가 없다. 수십 년간 불편함을 감수하고 사용해 왔던 공인인증서도 이제는 필수가 아니다. PC 없이도 금융거래 및 관공서 업무를 할 수 있으며, QR코드는 물론이고 모바일결제와 본인인증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우리가 꿈꾸던 진정한 디지털 시대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더 혁신적이고 편리한 디지털 생활을 위해 아직 해결해야 과제도 남아 있다. 규제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기 어렵다 보니 시대의 흐름에 맞는 규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한 사회적 약자들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양극화 방지 시스템도 마련돼야 한다. 디지털 변화에 적응이 어려운 노인층이나 금융 취약계층들이 불편함과 사회적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완충장치가 필요하다. 

 

르네상스 시대처럼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혁신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니즈와 불편을 해소하는 혁신 기업들이 탄생하고 시장에서 성장해야 한다. 이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정의된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막힌 규제(포지티브 규제)’ 체제에서 최소한의 규제 이외에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열린 규제(네거티브 규제)’ 로의 변화가 더욱 절실하다. 규제는 최소화하고 시장이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활성화 정책들이 마련된다면, ‘언택트 르네상스’ 시대의 경쟁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김형석 팀윙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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