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역대급 엔低시대

 최근들어 고객들의 엔화 매입에 관한 문의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엔·달러 환율은 108~109엔 정도였는데 3월 들어 가파르게 상승해 123엔선을 넘어섰다. 엔화가치가 6년래 최저치로 하락한 것이다.

 

 서울 외환시장에서도 원·엔 환율이 1000원 선에서 미끄러져 980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엔저현상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인플레이션으로 가속도가 붙었다. 실물경제나 금융시장의 위험이 커질 때 엔화는 달러와 함께 안전자산 주요피난처의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위기 때마다 엔화의 가치가 오르던 외환시장의 대표공식이 이번에는 작동하지 않은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지난 3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정례회의를 계기로 엔화가치의 하락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외형상의 이유는 미국과 일본 간의 디커플링 통화정책에 따른 양국 간 금리격차가 커지는 데 있다. 금리 차와 환차익을 노리는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미국으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엔화를 매도하고 달러를 매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엔저 현상에 국제적인 관심이 더욱 쏠리는 배경에는 아베신조 일본총리 사임 이후 주춤했던 ‘아베노믹스’의 부활 가능성이 자리잡고 있다. 1990년대 일본은 수많은 경기침체 요인이 얽히며 복합적인 불황에 빠졌다. 그중 가장 큰 요인은 ‘안전통화의 저주’와 관련이 있다. 경기침체에도 엔화 가치가 오히려 강세를 보이며 일본 경제를 더 어렵게 하는 현상이다.

 

 일본의 고령화와 저출산, 과도하게 위축된 소비, 수출기업의 탈 일본화와 혁신적인 기업의 부족 등 구조적 요인으로 인한 내수 부진을 아베노믹스를 통해 활력을 되찾아 해소해 보고자 했으나, 이를 탈피하기란 쉽지 않았다. 재정 여건도 크게 악화돼 적자 국채발행에 따른 구인(crowding in)보다 구축(crowding out)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유나 원자재를 구입하는데 쓰이는 통화에 달러 수요만 늘고 엔화는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것도 엔저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다보니 일본의 언론들도 외국인들이 더 이상 엔화를 안전자산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위기감을 표시하고 있다.

 

 엔저현상이 두드러질 때마다 수출실적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로 일본기업의 주가가 오르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아 금융권 등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결국 일본의 약화되는 경제위상과 미래성장성의 둔화가 엔저현상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만약 하반기까지 엔저 현상이 장기화되면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될까? 전통적으로 엔화 약세는 일본 수출기업에는 유리하고 한국 기업에는 불리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일본과 수출품 경쟁시 가격 경쟁력이 하락하는 것이 원인이다.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높은 석유화학, 철강, 기계, 자동차 등 업종이 엔저 영향권에 들 가능성으로 거론된다. 반면 조선, 통신, 전자기기 업종은 피해가 미미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의 경우 주력 품목이 차별화돼 있고 오히려 일본에 대한 부품의존도가 높아 원가절감 효과가 기대될 수도 있다.

 

 지금 엔화 수요가 있는 투자자들에겐 기분좋은 바겐세일 기간이겠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선 손톱 밑의 가시같은 상황일 것이다. 모든 것이 연결된 초연결 글로벌 시대에는 세계 각국의 일들이 우리 일상생활에 다양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하나은행 영업1부PB센터 PB부장 최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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