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65세 정년’ 김 부장의 인생 2막…연내 이뤄질까?

김민지 경제부장

 

‘서울에 번듯한 자가 아파트’, ‘대기업 부장 직함’, ‘연세대 다니는 아들내미’…

 

최근 화제 드라마 중 하나인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 나오는 김낙수 부장(1972년생)의 화려한 인생 이력들이다. 만약 50대 중년 남성이 이런 조건을 가졌다면, 럭키 가이라고 불릴 정도로 행운아일 것이다. 

 

드라마 속 김 부장은 한국 중년 세대의 자화상이다. 고지식한 꼰대 중년 남성이 뒤늦게 세상을 배워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그는 25년간 볼꼴 못 볼꼴 다 견디며 일해온 삶에 대해 스스로 “위대하다”고 외친다. 

 

물론 정글 같은 대기업에서 25년 차 부장으로 살아남아 서울에서 아파트를 사고 자녀를 SKY대학까지 보냈다면, 얼마나 본인의 인생을 갈아 넣었을까 싶다. 분명 대단한 인생이다. 

 

특히 이 드라마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김 부장의 심리를 심오하면서도, 독특하게 투영했다.

 

‘지방 발령’, ‘희망퇴직’, ‘퇴직의 공포’ 등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소재들이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현실 속 김 부장들은 어떨까. 드라마와 별반 다르지 않다. 

 

퇴직 그리고 정년 연장은, 직장인들에게 단연 화두다. 특히 정년을 맞는 1960년대 후반 출생, 김 부장들에겐 가장 큰 고민거리다.

 

부모와 자녀를 모두 부양해야 하는 ‘더블케어 세대’라서 정년 연장은 단순한 고용 문제를 넘어 가족 생계와도 직결된다.

 

현재 여당을 중심으로 한 정년 연장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노사 간 입장차가 워낙 큰 데다, 세대 간 이해관계도 얽혀있어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노동계는 고용 안정을, 경영계는 인건비 부담 완화를 놓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세대 갈등도 뚜렷하다. 청년층은 ‘일자리 축소’를 우려하고, 고령층은 ‘생계 유지’를 위해 연장을 희망하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최근 한국노총에서 열린 고위급 정책협의회에서 “정년 연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라며 “당 정년연장특별위원회에서 정년 연장과 퇴직 후 재고용을 결합한 입법 및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청년 고용 감소 우려와 관련해선 “세대 간 상생이 가능한 모델을 찾기 위해 청년위원회도 별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이 추진 중인 이른바 ‘정년+재고용’ 혼합 모델은 국민연금 수급 연령(현행 63세, 2033년 65세로 상향 예정)과 정년 사이 발생하는 무소득 구간(소득 크레바스)을 메우면서도 기업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정년을 3년마다 1년씩 단계적으로 올리고, 이후 연금 수급 연령까지는 재고용 형태로 고용을 유지하는 구조다. 정년 기간 중 연공서열형 임금체계가 유지되는 비싼 구간은 줄이고 이후 구간은 기업 부담이 낮은 재고용 형태로 전환해 비용을 완화하는 방식이 핵심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례적으로 한국의 ‘정년 문제’를 언급했다. 

 

IMF는 최근 홈페이지에 공개한 한국 특별보고서에서 정년 연장과 연금 조정을 함께 반영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정년을 현재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되,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을 68세로 상향 조정하는 방식이다.

 

보고서는 “국민연금 수급 연령을 2035년까지 68세로 늦추면 총고용이 14% 증가하고, 고령층 생산성이 유지된다는 전제에서 207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은 12%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정년 연장과 연금 개혁을 동시 추진해야만 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정년 연장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2022년 3674만명에서 2032년 3342만명으로 10년 새 332만명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65세 이상 인구는 985만명에서 1460만명으로 48% 증가가 예상된다.

 

정년 연장은 단순히 노년층의 생계 대책이 아니라, 세대 간 공정성까지 맞물린 구조적 문제다. 정부는 연금제도를 보완하고,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고령자 재고용과 청년 일자리 등 세대 간 균형을 맞춘 로드맵도 병행돼야 한다. 

 

더불어 우리 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를 경험한 나라들의 해법도 참고할만 하다. 일본과 독일, 대만은 이미 각자의 방식으로 정년 문제 해결에 나섰다. 대부분 임금 또는 연금 조정이 동반됐다.

 

누군가는 ‘매일 나이 드는 일이 두렵고, 아직도 낯설다’고 말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어느 정도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묵묵히 용기 있게 가는 모습. 이런 게 중년의 특권이 아닐까.  

 

연말 은퇴를 앞둔 ‘주식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95)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주주들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가 큰 울림을 준다. “절망하지 말라. 우리는 다시 일어설 것이며 버크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민지 경제부장

 

김민지 기자 minj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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