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아널드 조지프 토인비 박사는 “좋은 환경과 뛰어난 민족이 위대한 문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혹한 환경이 문명을 낳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의 과정이 인류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표현하면서 이를 ‘메기 효과’ 이론에 빗대어 설명했다. 메기 효과는 막강한 경쟁자의 존재가 다른 경쟁자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치열한 경쟁 환경이 개인과 조직의 발전을 도모하는 데 유익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올해를 한 달쯤 남겨두고 은행권을 돌이켜 보면 다사다난했다. 올해 초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에 따른 배상 문제가 있었고, 시중은행에선 각종 금융사고가 터졌다. 이에 금융그룹회장 가운데 처음으로 국정감사 증언대에 서는 일도 생겼다. 검찰의 고강도 검사가 진행될 곳도 있었다. 각종 문제가 잊을 만하면 발생했지만 이와는 별개로 은행들은 고금리를 기반으로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런 가운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간 금융권의 관심을 끌었던 제4 인터넷전문은행(인터넷뱅크)의 신규 인가 조건이 공개됐다. 금융위원회는 27일 ‘혁신적 사업 모델’과 ‘포용 금융’에 기반한 지속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심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융위는 신규 인가를 추진하는 배경에 대해 “인터넷뱅크의 신규 인가는 은행 산업 내 신규 플레이어 진입을 통해 금융 비용 및 서비스 측면에서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제4 인터넷뱅크의 신규 인가 조건은 이미 발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과 한 달 전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은행권의 이자수익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고 비판하면서 실질적인 ‘금융 혁신’과 ‘포용 금융’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이는 금융당국이 제4 인터넷뱅크에 요구하는 인가 조건과 일치한다. 김 위원장은 “삼성전자가 이익을 내면 다들 칭찬하지만 은행은 이익을 내면 많이 났다고 한 소리 한다”면서 “은행은 상생의 노력, 더 길게 본다면 혁신의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결국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의 문제로 지적되는 혁신성과 포용 금융을 실현한 사업자에 은행과 경쟁할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은행권 전반에 경쟁을 촉진하는 ‘메기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7월 출범한 제2 인터넷뱅크인 카카오뱅크는 출범 초창기 공인인증서 없이 송금이 가능한 ‘간편 송금’과 같은 각종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업계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다. 이후 은행들과 저축은행들도 이러한 모바일앱 고도화, 간소화를 진행하면서 일종의 ‘메기 효과’를 냈다. 소비자의 결제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키는 계기가 됐다.
2017년 4월 케이뱅크가 영업을 시작하고, 그해 7월 카카오뱅크, 2021년10월 토스뱅크 출범으로 현 인터넷뱅크 3사 체계가 형성됐다. 금융당국은 인터넷뱅크 등장으로 은행권 전반의 디지털 금융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고 수수료 절감 및 중·저신용자 대출 공급 확대 등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들 3사 역시 최근 주택담보대출 등 외형 성장 중심의 수익 기반 확대로 기존의 시중은행과의 차별성이 희석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다시 한번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들이 제4 인터넷뱅크에 거는 기대감이 높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금융 비용과 서비스 측면에서 경쟁을 촉진해 국민들이 실질적인 편익을 체감할 수 있는 새로운 ‘메기’의 탄생을 바라고 있다. 하루 빨리 금융권에 새로운 변화를 이끌고, 포용 금융을 확산시킬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하길 기대한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