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광장] 갑질 박물관이었던 어느 베이글 맛집

 MZ세대 빵지순례 명소. 몇 시간을 기다릴 가치가 있는 베이커리. 이름에 걸맞게 유럽에 온 듯한 특별한 감성을 제공하는 맛집.

 

 올해로 창립 5년차를 맞은 런던베이글뮤지엄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은 2021년 9월 안국점을 시작으로 전국에 7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특히 안국점과 제주점은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선 모습이 온라인 상에서 주목받으며 더 큰 유명세를 불러모았다. 유통가도 러브콜을 보냈다. 실제로 쇼핑몰에 입점한 런던베이글뮤지엄은 소비자들의 발길을 불러모으는 핵심 테넌트로 역할을 톡톡히 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은 맛도 맛이지만 브랜드 스토리와 유럽 감성의 매장 인테리어로 젊은 소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원격 줄서기를 해도 수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빵 1개당 가격이 4000원 이상으로 저렴한 편이 아니지만 쟁반에는 빵이 수북이 쌓여 있다. 혹자는 마케팅의 승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공의 이면에 젊은 근로자의 과로사 의혹이 불거진 것은 사망 사건 발생 후 2달여가 지난 최근의 일이다. 한 매체는 지난달 27일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천점 주임으로 일하던 A씨가 지난 7월 16일 회사 숙소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결국 숨졌다고 보도했다. 고인의 스케줄표와 카카오톡 대화내역에 따르면 사망 직전에는 주당 58~80시간을 근무한 것으로 추정됐다. 입사 후 14개월간 4개 지점을 옮겨 다녔고 사망 전날에는 아침 9시에 출근해 자정 직전에 퇴근했다. 여자친구에게는 ‘밥도 못 먹었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유족은 키 185㎝, 체중 80㎏으로 건장했던 고인의 죽음을 과로로 인한 업무상 재해로 보고 산재를 신청했다. 하지만 본사가 산재 조사 과정에 협조하지 않아 부침을 겪었다고 전했다.

 

 해당 의혹은 정치권에도 파장을 일으켰다. 정의당은 즉시 성명을 내고 청년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이미선 진보당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청년의 노동과 목숨을 브랜드 원가로 삼은 명백한 기만이자 폭력이며 탐욕이 만들어낸 살인”이라고 강도 높게 질타했다.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탓일까. 런던베이글뮤지엄 운영법인 엘비엠(LBM)은 이튿날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보도를 자제할 것을 당부하는 공식 입장문으로 사태를 무마하려 했다. 고인의 근로시간이 주 80시간에 달했다는 기록이 없으며 유족에게 자료도 성실히 제공했다는 주장이다.

 

 근거는 매우 부실하다 못해 전무한 수준이다. LBM은 고인이 입사 후 직접 신청한 연장근로가 총 7회(합산 9시간)에 불과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사망 전날에도 자체 시스템을 통해 연장근로신청을 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설상가상으로 입출입을 관리하는 지문인식기는 먹통으로 고인의 근무기록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본사가 유족에게 제공한 자료는 의미가 있는 것이었을까.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고 그 동안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런던베이글뮤지엄 전현직 직원들도 언론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목소리를 냈다. 이를 통해 ▲한달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쪼개기 계약구조 ▲CCTV를 통한 상시 감시 및 과도한 시말서 작성 ▲비밀유지 서약서 작성 등 갑질 종합 세트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LBM이 운영하는 다른 브랜드들인 카페 하이웨스트, 카페 레이어드 등에서도 동일한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는 제보도 잇따랐다.

 

 노동부는 지난달 29일부터 런던베이글뮤지엄 본사와 인천점을 대상으로 감독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법 위반 정황이 확인돼 이달 4일부터 런던베이글뮤지엄 전 지점과 LBM 계열사 18개 사업장 전체로 감독 대상을 확대했다.

 

 꿈에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청년들의 순수한 열정을 업계 관행이라는 포장으로 악용하는 일이 재발해선 안된다. 자제해야 하는 것은 보도가 아니라 사건 은폐∙축소다. 이번 사태가 악습을 뿌리뽑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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