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바람을 벗 삼아 물 위를 노니는 뱃놀이는 가장 멋스러운 여흥이었다. 산이 물을 안고, 물이 하늘을 비추는 청평호 위에서는 이같은 정취가 되살아난다. 이러한 여유를 즐기고 싶다면 경기 가평마리나로 향해보자. 남이섬, 자라섬, 청평호 일대를 유유자적 다니는 가평크루즈가 가을철 여행의 여유를 만끽하도록 한다.
지난 12일 오후 1시 20분, 경기 가평마리나 선착장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가평크루즈를 타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선착장을 출발해 남이섬과 자라섬을 향해 가는 ‘섬섬투어 크루즈’ 손님들이다.
◆가을하면 남이섬… 크루즈는 인생샷 명소
가을 당일치기 여행 명소 하면 역시 남이섬이다. 빼곡한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가득해 한국의 아름다운 가을을 한눈에 담을 수 있어 내외국인 할 것 없이 찾는다. 문제는 교통체증이다. 남이섬으로 향하는 길의 교통체증이 부담스럽다면 가평크루즈가 해답이다.
크루즈에 탑승하면 북한강의 풍경을 그대로 즐기며 교통정체 없이 남이섬까지 바로 이동할 수 있다. 설악IC에서 차량으로 약 8분 거리인 선착장은 접근성도 좋다. 가평 시내를 경유하지 않고 남이섬까지 이어져 이동이 한결 수월하다.
남이섬을 향하는 크루즈는 매주 월~목요일 오후 1시 30분 출항한다. 남이섬 코스의 경우 1시간 항해해 섬에 도착한 뒤, 약 2시간의 자유시간을 갖고 오후 5시 30분에 가평마리나로 복귀하는 코스로 운영된다.
1시간이라는 항해 시간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는 기우다. 북한강 절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른다. 특히 단체 손님으로 오는 중장년층 여성들은 다시 소녀가 된 듯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2층 갑판은 어디서 찍어도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다. 3층 이용 가능 시 이곳 갑판에서 2층의 인물 사진을 찍는 것도 추천.
남이섬은 북한강 가운데 위치한 면적 46만㎡, 둘레 약 5㎞의 작은 섬이지만 2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남이섬의 아이코닉한 포토존 메타세쿼이아길과 은행나무길에서 가을의 한 장면을 담아보자. 걷다 보면 타조, 토끼, 다람쥐, 청설모, 공작, 거위, 오리 등을 만날 수 있다.
섬을 한 바퀴 돌고 싶다면 자전거를 빌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추운날에는 모닥불에서 불멍을 즐기며 마시멜로를 구워 먹는 것도 좋겠다. 찐빵, 호떡, 오뎅 등 계절 간식도 가득하다.
11월 중순 이후 남이섬 당일치기 단풍 여행을 계획한다면 남이섬 북쪽 갈대숲길을 들르자. 햇살이 덜 드는 위치라 단풍이 가장 늦게 들지만, 절정이 되면 빽빽한 단풍나무가 예술적인 풍광을 만든다. 이밖에 가평크루즈는 청평호 일대를 한 바퀴 도는 ‘청평호 투어’ 유람선도 매일 운항 중이다.
◆펫팸족도 함께 타는 전기유람선
“너도 여기 탔어? 좋은 배 타고 호강하네.”
이날은 강아지 손님도 함께 승선했다. 강아지 ‘토토’(7)는 가족과 함께 첫 남이섬 나들이를 위해 크루즈에 탑승했다. 토토는 중장년층 손님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가평크루즈 측에 따르면 최근 펫팸족 증가로 반려견과 함께 크루즈를 이용하는 승객이 부쩍 늘었다. 관계자는 “요즘 단풍이 들면서 크루즈 내에 유모차가 부쩍 늘었다”며 “아기가 탄 유모차도 많지만, 강아지 손님이 탄 ‘개모차’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15㎏ 이하의 반려견은 전용 캐리어에 탑승할 경우 가평크루즈 승선이 가능하다. ‘강아지 천국’으로 불리는 남이섬과 자라섬을 반려견과 함께 둘러볼 수 있다. 단, 동물보호법상 맹견류는 탑승이 불가능하다.
◆순수 전기 추진, 매연·소음 없는 친환경 유람선
가평크루즈는 상수원보호구역인 북한강을 운항하기 위해 순수 전기 추진 유람선으로 설계됐다. 덕분에 디젤엔진 특유의 기름 냄새나 진동이 없고, 엔진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후각이 예민한 사람은 물론 반려견에게도 쾌적하다.
출항 직후부터 북한강의 풍경이 순차적으로 펼쳐진다. 가평천과 북한강이 만나는 합수부를 지나면 물빛이 달라진다. 산간 하천의 맑은 물과 본류의 깊은 강물이 섞이며 수면은 초록빛에서 청록빛으로 번진다.
◆강이 바뀌고, 산이 열린다… 아름다운 풍광에 힐링
이후 항로는 청평댐 상류 수역으로 접어들며 파노라마처럼 열린 산세가 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에는 운악산과 화악산 능선이 선명히 드러난다. 단풍으로 물든 산을 바라보며 즐기는 ‘선상 단풍놀이’는 가평 가을의 백미다.
남이섬으로 향하는 중반부에는 북한강을 따라 펜션과 캠핑존이 이어진다. 저녁 무렵엔 불빛이 수면 위로 반사돼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가평크루즈가 운영하는 야간 운행 ‘달빛 크루즈’에서는 이러한 불빛들이 물길을 따라 이어져 색다른 야경을 완성한다.
◆‘여배우의 웨딩’…특별한 이벤트도 운영
유람선은 총 3층 규모로 운영된다. 1층은 통창으로 구성된 실내 휴식공간으로, 계절과 관계없이 청평호의 전경을 감상하기 좋다. 2층은 실내 공간과 오픈 데크로 구성돼 가장 인기 있는 구역이다. 갑판에 서 있어도 엔진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아 대화하기도 좋다.
3층은 VIP플레이스로 꾸며진 공간으로, 360도 파노라마 뷰를 즐길 수 있다. 행사나 이벤트 대관 시 사용되며, 예약이 없을 경우 일반 승객도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수용인원은 30명, 대관시간은 1시간 단위로 가능하다.
가평크루즈는 최근 다양한 이벤트와 행사를 유치하고 있다. 특히 배우 최여진의 결혼식이 화제가 됐다. 1층은 리셉션 공간, 2층은 버진로드와 메인홀, 3층은 선상 파티 공간으로 꾸며져 ‘크루즈 웨딩의 정석’을 보여줬다. 수많은 하객은 2~3층 갑판에서 새로운 시작에 나서는 신혼부부를 축하했다. 이후 이 공간이 선상파티장으로 변신해 눈길을 끌었다.
◆가평 한층 재밌게 즐기는 여행코스
가평크루즈를 이용하면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과거 ‘수상레저, 빠지의 성지’로 인식되던 가평 청평호 일대는 이제 자연 속에서 여유를 즐기기 좋은 관광지로 세계관을 확장하는 중이다. 수변 산책로와 다양한 카페, 크루즈 선박 운항이 더해지며 새로운 관광자원이 생긴 것.
우선 마리나 선착장 자체도 관광명소로 손꼽힌다. 1층에는 대합실 인근에 MD숍을 두고 볼거리를 더했다. 2·3층은 마리나 카페, 4층은 루프톱으로 구성돼 호수를 바라보며 휴식이 가능하다.
가평마리나 건너편의 복합공간 ‘HJ매그놀리아멋집’에는 아쿠아가든카페, 신비동물원, 고흐 갤러리, 청와대 출신 천상현 셰프의 중식당 ‘천상’ 등이 들어서 주말마다 붐빈다. 수변 끝자락의 효정연과 효정카페는 청평호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조용한 명소다.
아쿠아가든카페 가평점은 차를 마시며 수중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공간이다. 걸그룹 트와이스의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했다. 카피바라, 수달 등 다양한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신비동물원도 아이들에게 인기다.
가평 베고니아새정원도 놓치지 말자. 세계멸종위기 희귀 새들이 가득한 이곳에서는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희귀 새를 볼 수 있고, 펭귄이 수영하는 모습을 실내에 관찰할 수 있다.
새뿐 아니라 보어염소와 알파카 등 포유류도 만날 수 있다. 2000여개의 베고니아 꽃이 채운 플라워존, 40여 종의 희귀 조류를 만날 수 있는 버드존, 주제별 정원이 조성돼 크루즈와 연계한 당일 여행 코스로 인기다. 연인들은 데이트하기 좋고, 아이들은 놀면서 자연스럽게 동물보호 에티켓을 배우기 좋은 공간이다.
이곳에서 꼭 만나봐야 할 조류는 국내 최초로 입식된 흑백 투구 코뿔새다. 거대한 부리 위에 ‘투구’처럼 보이는 독특한 구조가 특징인 코뿔새(Hornbill)류로, 아프리카의 제한된 지역에서만 서식하며 멸종위기종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가평크루즈는 가평크루즈 청평호 투어권과 가평베고니아새정원 당일 입장권을 46% 할인해주는 ‘힐링패키지’도 선보이고 있다.
TIP. 가평크루즈는 계절별 특별 운항 프로그램도 마련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오는 11월 15일에는 야간 운항과 선상 뷔페, 공연이 결합된 ‘달빛투어’를, 12월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한 ‘크리스마스 달빛투어’를 운영한다. 밤하늘의 달빛과 수면 위 조명이 어우러지는 가평의 겨울 풍경은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할 전망이다.
2026년 1월 1일에는 청평호 위에서 새해를 맞는 ‘해돋이 크루즈’가 예정돼 있다. 자세한 내용은 가평크루즈 홈페이지와 SNS 등을 참고하면 된다.
가평=글·사진 정희원 기자 happy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