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팩트시트에는 양국이 경제·통상 분야에서 합의한 관세 인하 내용이 폭넓게 포함돼 있다. 특히 수출 효자 품목인 자동차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조치와 함께, 반도체 산업에 대해 최혜국 대우를 명문화한 점이 핵심 변화로 꼽힌다. 여기에 의약품 관세를 15%로 조정하는 내용까지 더해지며 주요 산업 전반에 걸쳐 관세 구조가 재정비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6일 산업계에 따르면 한국산 자동차 관세가 현재 25%에서 15%로 인하되며, 인하 적용 시점은 우리 정부가 대미 투자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달의 1일로 소급된다. 법안이 이달 제출될 경우 11월 1일 기준으로 적용된다. 이번 합의에는 조선업 분야 1500억달러 규모의 협력 투자와 20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도 포함됐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을 통해 이러한 내용을 담은 한·미 간 경제·통상 분야 팩트시트를 공개했다. 양국은 ▲핵심 산업 재건 및 확장 ▲외환시장 안정 ▲상업적 유대 강화 ▲상호무역 촉진 ▲경제 번영 수호 등 다섯 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우리 정부가 핵심적으로 추진한 자동차·자동차 부품, 목재 및 관련 파생물 품목의 관세율은 15%로 조정되며, 총관세율 또한 15%를 넘지 않도록 규정했다. 김 실장은 법안 제출 시점에 따라 관세 인하가 소급 적용되므로, 관세를 15%로 낮추기 위해서는 보름 내 법안 제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 중 하나인 반도체에 대한 최혜국 대우도 명문화를 앞뒀다. 앞서 ‘반도체 라이벌 국가’인 대만과 동등한 수준 정도로만 언급됐던 것이 이번 팩트시트를 통해 대만뿐 아니라 일본과 유럽연합(EU) 등 다른 경쟁국들과 비교해도 불리하지 않은 조건으로 구체화 됐다. 이에 업계의 불확실성도 해소되는 분위기다.
다만 세부 내용에 대한 협상이 장기화할 가능성은 있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이란 표현의 디테일에 있어서 앞으로도 작은 협상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양국 모두 서로의 이득에 더해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역학 관계 등을 복합적으로 따져 세부 내용을 정해갈 것으로 보인다.
한국산 의약품 관세도 15%를 넘지 않게 됐다. 최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을 계기로 열린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의약품에 대한 관세의 양국 협의가 마침내 명문화된 것. 그보다 앞서 100% 관세 등 불확실성에 직면했던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사업 부담이 크게 낮아졌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도 “지난 구두 협상 내용이 문서화됐다는 것은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관세 대폭 인상이라는 불확실성이 제거됐다. 미국 내 의약품 가격 인하 및 유통구조 개선 정책과 맞물려 바이오시밀러 등 국내 의약품의 미국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반겼다.
다만 제네릭(복제약) 의약품의 무관세 유지와 달리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어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 이 같은 내용에 대해 협회는 “미국 시장에 진출 중인 대부분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은 미국 내 위탁생산(CMO) 시설 확보 등을 통해 관세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대비가 돼 있어 충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재원·박재림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