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철의 생활법률] “남편이 일주일 내내 행패”... 가정폭력 피해자가 ‘살인미수’ 피의자가 된 순간

사진=최유철 (법무사, 부동산학 석사)

가정은 삶의 가장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야 하지만, 폭언과 폭력이 반복되는 폐쇄적 공간이 될 경우 그 안의 구성원은 고립과 고통 속에 놓이게 된다.

 

최근 전주에서 50대 여성이 60대 남편을 살해하려 했다는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스스로 경찰에 “남편을 죽였다”고 신고했고, 남편 B씨는 위독하지만 생명은 유지한 채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가정폭력의 흔적이 있었다.

 

A씨는 남편의 목을 졸라 살해하려 한 혐의(살인미수)로 체포됐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남편이 술만 마시면 폭언과 폭행을 했다”며 “최근 일주일 내내 행패를 부려 참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자녀 역시 가정폭력이 있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지난해부터 두 사람이 가정폭력으로 신고한 이력이 없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로 전락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법적 딜레마를 보여준다. A씨는 경찰에 “죽였다”고 신고했다. 그리고 B씨는 현재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B씨가 살아 있음에도 ‘살인미수’(형법 제254조, 제250조) 혐의가 적용된 것은 A씨의 행위, 즉 ‘목을 조르는 행위’ 때문이다.

 

법원은 목을 조르는 행위를 상대방이 사망할 수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실행한 것으로 보며, 이를 ‘살인의 미필적 고의’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A씨가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고 주장하더라도, 행위 자체가 가진 위험성만으로도 살인미수 혐의는 성립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수십 년간 맞고 살았는데, 정당방위가 아닌가?”라고 묻는다. 그러나 형법 제21조(정당방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행위여야 한다.

 

A씨의 진술처럼 "일주일 내내 행패를 부려 참지 못했다"는 것은, 범행 당시 남편이 A씨를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있었다기보다, 누적된 폭력에 대한 분노가 극단적인 방식으로 폭발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만약 남편이 잠들어 있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순간에 범행이 이루어졌다면, 이는 '현재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정당방위로 인정받기 어렵다.

 

경찰이 "112 신고 이력이 없다"고 밝힌 부분은 이 사건의 가장 비극적인 지점이다. 이는 폭력이 없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피해자가 보복의 두려움, 경제적 문제, 혹은 "참고 살면 나아지겠지"라는 기대 때문에 공적 시스템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신고 이력이 존재했다면 법원은 A씨가 얼마나 오랫동안 고통받았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록이 없는 폭력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였던 A씨가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또 하나의 부담이 된다.

 

비록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A씨와 자녀의 진술을 통해 오랜 기간 가정폭력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는 재판부가 형량을 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정상참작 사유가 된다. 끔찍한 범행에 이르게 된 '참작할 만한 동기'가 인정될 경우,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감형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번 사건은 가정폭력이 언제든 더 큰 범죄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피해자가 '살인미수' 피의자가 되는 비극은,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공적 시스템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우리 사회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고,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는 것 역시 법치국가에서 허용될 수 없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벼랑 끝에 내몰린 가정폭력 피해자의 절규를 외면하지 않았는지 우리 사회 전체가 돌아봐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고 있다면, 112 또는 여성긴급전화 1366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비극을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글쓴이: 최유철 (법무사, 부동산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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