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기, 영국 방직공장에 기계식 방직기가 도입되자 직조공들은 이를 파괴하며 저항에 나섰다. 일자리 상실에 대한 위기감이 행동으로 표출된 것이다. 19세기 초 벌어진 ‘러다이트 운동’이다. 이는 기술 도입을 둘러싼 단순한 역사적 갈등이 아니라 인간과 기계의 관계가 충돌해 온 반복적 장면으로 남아 있다.
21세기 들어 이제는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성큼 다가왔다.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두 세기 전의 기억이 다시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이 노동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 갈등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전시장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 로봇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부품을 옮기는 작업을 시연했다. 사람과 유사한 신체 구조와 동작을 구현한 이 로봇은 제조와 물류, 위험 공정 투입 가능성을 보여주며 산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기술의 진보가 만들어낼 생산 현장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장면이었다. 이미 현대차그룹의 4족보행 로봇은 영국의 원전 해체 현장에 투입됐다.
국내 산업 현장에서는 기대와 함께 긴장도 나타난다. 현대차 노동조합은 아틀라스 도입과 관련해 노사 합의 없는 투입에 반대 입장을 밝히며 갈등의 조짐을 드러냈다. 기업으로서는 생산성 향상과 비용 구조 개선 가능성이 거론되는 신기술을 외면하기 어렵다. 로봇은 사람과 달리 장시간 운영이 가능해 비용 절감에 뛰어나다. 반면 노동자들로서는 기술 도입이 고용 충격이나 인력 구조 축소 논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이 같은 충돌은 특정 기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산업 전반에서 자동화 기술은 필수 인프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제조 현장에서 로봇 활용이 확대되고 물류, 서비스, 유지관리 영역까지 적용 범위가 넓어지는 흐름이다. 기술 확산은 경쟁력 확보와 직결되는 요소로 인식되며 도입 속도를 늦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역사적으로도 기술 도입의 흐름은 되돌릴 수 없었다. 산업혁명기 러다이트 운동 이후에도 기계화는 확산됐다. 그렇다고 당시의 저항을 단순한 시대착오로 볼 수는 없다. 기술 도입이 인간의 삶과 역할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긴장이 발생하는 것은 반복된 경험이기 때문이다.
결국 쟁점은 기술 도입의 여부가 아니라 방식에 가깝다. 인간 중심 설계, 변화 과정에서의 역할 재배치, 생산성 향상의 과실 분배 등 사회적 합의가 중요해지고 있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구조로 작동할지, 협업을 통해 역량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작동할지는 제도와 선택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주요 국가들은 휴머노이드와 AI 확산을 선택의 문제가 아닌 전제로 받아들이고 노동시장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동화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라는 인식 아래 기술 도입 자체의 찬반을 넘어 ‘공존 구조’를 설계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글로벌 주요국은 기술 확산을 전제로 노동시장 대응 체계를 마련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유럽연합(EU)은 2024년 ‘인공지능법(AI Act)’을 승인하고 고용·교육 등 영역에서 활용되는 고위험 AI에 대해 사전 설명과 인간 감독 의무를 규정했다. 기술 활용을 제도 안에서 관리하려는 접근으로 해석된다.
독일은 근로자 대표기구인 직장평의회에 자동화 설비 도입 관련 공동결정권을 부여해 신기술 도입 시 노사 협의를 제도화하고 있다. 일본은 로보틱스를 노동 대체가 아닌 보완 수단으로 활용하며 돌봄·설비 점검·물류 분야에서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인력 부족 대응 수단으로 기술을 활용하는 전략이다.
국내에서도 관련 제도 논의가 진행 중이다. 노동계에서는 자동화 기술 도입이 고용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검토하는 ‘노동영향평가’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기술 확산에 따른 산업 생태계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AI와 로봇이 산업 현장에 깊숙이 들어오는 흐름은 피하기 어렵다. 갈등이 단순한 반대나 일방적 강행으로 이어질 경우 사회적 비용만 커질 수 있다. 기술의 속도에 대응하는 공존의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계를 부수던 시대와 달리 오늘날의 과제는 인간과 기계가 함께 일하는 구조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있다.
정희원 기자 happy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