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 중인 ‘원화 국제화’의 본질은 단순히 원화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원화를 깊고 유동적인 통화로 만들어 글로벌 자본시장과의 정합성을 높이는 데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26일 자본시장연구원이 발간한 ‘원화 국제화의 기대효과와 과제: 역외 원화거래 확대를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의 국내 증권투자와 국내 거주자의 해외투자를 합친 국경 간 증권투자 잔액은 2025년 말 기준 약 2조6180억달러로 2010년 대비 4배 이상 급증했다.
국내 자본시장은 글로벌 금융시장과 긴밀히 통합됐으나, 외환 인프라는 여전히 국내 시장 의존도가 높고 글로벌 수요를 제때 흡수하지 못하면서 원화 외환거래의 약 68%가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으로 쏠리는 현상이 이어져 왔다. 글로벌 지수 산출기관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는 외환시장 개방 조치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의 원화 실물 인수도가 제한적이고 거래시간대 유동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한국의 선진지수 편입을 유보한 바 있다.
김한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원화 국제화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글로벌 거래 수요가 실제 원화의 보유·조달·결제로 이어지도록 제도적 제약을 완화하는 과정”이라며 “해외 결제 인프라가 갖춰지면 기존 NDF 중심 수요가 현물환, 외환스왑, 원화 단기자금시장 등으로 확산돼 원화시장의 거래 기반과 가격발견 기능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발맞춰 한국은행과 정부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외환당국은 24시간 외환시장 개장 체제를 본격화한 데 이어, 외국인이 해외 현지 은행의 원화계좌를 통해 자유롭게 거래·결제할 수 있는 역외원화결제망 구축에 착수했다. 야간 시간대 유동성 공백을 막기 위해 1단계 민간 공급선에 이어 한은 중심의 공공 백스톱(안전판)을 마련하는 등 역외 유동성 공급과 결제 인프라 정비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다만 자본시장연구원은 단순한 제도 개방만으로 충분한 유동성이 저절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경고했다. 글로벌 은행과 마켓메이커의 실질적 시장 참여와 안정적 호가 공급을 유도하는 한편, 대외 금융 충격이 국내로 빠르게 전파될 가능성에 대비해 역내외 모니터링과 유동성 관리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분석이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원화 국제화의 핵심은 원화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화를 깊고 유동적인 통화로 만드는 것”이라며 “향후 정책 성과 역시 환율 등락보다는 거래량, 매수·매도 호가차, 야간시간대 유동성, 대규모 주문의 가격충격 완화 등 원화시장의 폭과 깊이가 얼마나 실질적으로 개선됐는지를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