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가 연 3%대 중반을 넘어 최고 연 3.6%까지 치솟고 있다.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한 반면,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등 가계대출은 일제히 감소세로 돌아섰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와 증시 변동성 확대가 맞물리면서 위험자산에 쏠렸던 유동성이 안전한 확정 고금리를 찾아 은행으로 되돌아오는 ‘역(逆)머니무브’가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우리은행 최고 3.6%로 ‘선봉’…5대 은행 1년 만기 줄줄이 상향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지난 11일 ‘우리 첫거래우대 정기예금’의 1년 만기 최고금리를 종전 연 3.1%에서 연 3.6%로 0.5%포인트 전격 인상했다. 주요 시중은행 정기예금 상품을 통틀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상품은 신규 가입 직전 연도 말 기준 우리은행 계좌가 없던 고객에게 연 1.0%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비대면 전용 상품이다. 우리은행은 6개월~1년 만기 기본금리를 종전 연 2.1%에서 연 2.6%로 0.5%포인트 상향 조정해 우대조건 충족 시 최고 연 3.6%를 받을 수 있도록 재편했다. 간판 정기예금인 ‘WON플러스예금’의 1년 만기 금리도 연 3.4%를 나타내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들도 잇달아 수신금리 인상 대열에 올라탔다. 신한은행은 지난 9일 대표 비대면 상품인 ‘쏠편한 정기예금’ 1년 만기 금리를 연 3.2%에서 연 3.4%로 0.2%포인트 올렸다. 하나은행 역시 10일 ‘하나의 정기예금’ 1년 만기 금리를 연 3.2%에서 연 3.3%로 0.1%포인트 인상했고, NH농협은행은 11일 ‘NH올원e예금’ 금리를 연 3.25%에서 연 3.45%로 0.2%포인트 높였다. 현재 연 3.2%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KB국민은행의 ‘KB Star 정기예금’ 또한 은행채 등 시장금리 흐름을 반영해 조만간 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5대 은행 예금 잔액 첫 1000조 돌파…가계대출 줄고 증시대기자금 14조 ‘증발’
은행권의 잇단 수신금리 인상은 자금 시장의 판도를 빠르게 흔들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 고지를 밟았다. 증시 조정 국면과 맞물려 연 3%대 중반에 진입한 예금 금리의 투자 매력도가 부각되자 부동자금이 대거 흡수된 결과다. 실제로 증시 대기자금(투자자예탁금 등)은 지난 6월 말과 비교해 약 14조원이나 급감하며 자금 이탈세를 뚜렷하게 드러냈다.
반면 가계대출 시장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은 8개월 만에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전세대출이 일제히 줄어드는 ‘트리플 감소’를 나타냈다. 대출금리 상단이 높아진 데다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압박으로 대출 문턱이 높아지자 차주들이 신규 차입을 꺼리고 기존 빚 상환에 나선 탓이다. 자산시장의 활황을 이끌던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자금이 빠져나가고, 대신 은행권 수신 계좌로 돈이 쌓이는 구조적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은행채 강세·만기 도래 맞물려”…우대금리 실효성 따져야
금융권에서는 당분간 은행권의 수신금리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은행의 자금조달 원가인 은행채 금리가 뛰고 있는 데다, 통상 가을철부터 연말 사이에 집중되는 대규모 정기예금 만기에 대응해 기존 고객 이탈을 방어하려는 수신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다만 최고금리 수치만 보고 섣불리 가입하기보다는 실질 수령액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 3.6% 수준의 최고금리는 첫 거래 등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의 금융거래 이력에 맞춰 우대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기본금리 중심의 상품을 선택하거나, 6개월과 1년 단위로 만기를 분산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전략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