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화재 후폭풍] 전동화 시대로의 전환...전기차 포비아로 급브레이크

사진설명 지난 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이후 ‘전기차 포비아’가 확산하고 있다. 12일 서울의 한 아파트에 '전기자동차는 지상주차장으로'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시스

 자동차 전동화는 시대적 흐름이다. 100년 이상 인류의 발 역할을 해온 내연기관의 시대가 저물고 전기차 시대가 찾아왔다. 자동차 업계는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둔화 현상)’을 겪고 있지만, 전기차의 미래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전기차 캐즘 극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던 자동차 업계가 암초를 만났다. 지난 1일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로 안전성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된 것이다. 청라 화재 이후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까지 급속도로 퍼진 상태다. 전기차 출입과 주차를 둘러싼 ‘전기차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 현상도 생겨났다. 전기차의 안전성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자 업계는 국내 전기차 수요에 악영향을 미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안정성에 대한 신뢰는 이제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 진입을 위한 필수과제다.

 

◆주정차·충전 중 화재가 무섭다 

 

 소비자의 불안감이 큰 이유는 충돌 혹은 사고발생 상황을 떠나 주정차 중 화재가 발생하는 사례가 많아서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총 139건으로, 이 중 48%(67건)는 주차 중(36건)이거나 충전 중(26건), 정차 중(5건)에 발생했다. 청라 아파트 화재도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차량에서 불이 나면서 시작됐다. 지난 6월30일엔 인천 남동구 한 도로에서 탁송 트럭에 실려있던 레이 전기차에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대부분은 배터리의 결함이나 차주의 과충전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한다. 특히 과충전된 상태가 화재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11일 서울 시내 한 쇼핑몰에 설치된 전기자동차 충전소 모습. 뉴시스

◆열폭주로 인한 진화 어려움 

 

 전기차 화재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진화가 어렵다. 배터리에 충격이 가해지면 내부에서 열이 발생해 분리막이 파손될 수 있는데, 이 경우 순식간에 1000도 넘게 온도가 치솟는 열폭주가 일어난다. 게다가 충전설비 때문에 주변 차량도 전기차들이므로 불길이 폭발적으로 번질 수 있다.

 

 흔히 쓰는 분말소화기는 전기차 아랫부분에 설치된 배터리까지 침투하지 않아 냉각 효과가 거의 없다. 또 국내 아파트는 지하 주차장에 전기차 주차 공간 및 충전 시설을 설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방차가 지하에 진입할 수 없어 화재 진압이 더 어렵다.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시급 

 

 전기차 화재로 인해 전고체 배터리가 주목받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인화성 액체 전해질을 고체 전해질로 대체해 화재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어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전고체 배터리는 아직 개발 초기 단계며 2027~2028년쯤 전고체 배터리가 도입되더라도 대중화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또 전고체 배터리가 화재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화재 발생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실까지 ‘신속 대책’ 지시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자 대통령실까지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2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례회동을 열어 “전기차 화재에 따른 국민 불안감이 없도록 신속하게 대책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의 지시 후 곧바로 환경부 차관 주재로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등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안전 관계부처 실무회의가 진행됐다. 13일에도 차관회의가 이어졌다. 정부는 9월초 전기차 화재 종합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서울시 역시 충전율을 90% 제한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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