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 품목에 대한 고율 관세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한 국내 반도체 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28일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열린 미-EU(유럽연합) 정상회담 발표 자리에서 “2주 이내에 반도체 관세안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조치는 미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반도체 수입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 결과에 따른 후속 절차로 알려졌다. 관세 적용 대상에는 반도체 기판, 웨이퍼, 범용 및 첨단 반도체, 반도체 장비 및 부품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업계 영향은 제한적? 공급망 자체를 바꿔야 할 수도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반도체 수출은 106억 달러(약 14조6131억원) 규모로 전체 수출의 7.5%에 해당한다. 중국(32.8%)이나 홍콩(18.4%), 대만(15.2%), 베트남(12.7%) 등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이다.
관세율이나 세부 적용 품목이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제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유동적이다. 그러나 조사 대상 품목이 광범위한 만큼, 부품 공급업체나 세트 완제품 업체로까지 파장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직접적인 대미 반도체 수출뿐만 아니라 제3국에 수출하는 반도체도 간접적인 관세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다. 결국 완제품 생산업체들이 반도체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에 생산시설을 갖춘 반도체 업체로 공급망을 바꿀 유인이 커지게 된다.
◆미국,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 재편 의지 반영
미국 정부는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기술의 국내 생산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러트닉 장관은 “우리는 반도체 생산을 미국으로 다시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외국 기업의 미국 내 투자 확대를 유도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텍사스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며,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패키징 시설을 준비 중이다. 다만 메모리 생산시설은 아직 미국 내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반도체 관세 검토가 협상 수단의 일환일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실제 자동차, 철강 등 앞선 사례를 보면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부과를 협상 지렛대로 활용해 자국 내 투자를 유도해온 바 있다.
한 반도체업계 전문가는 “향후 발표될 세부 관세안에 따라 구체적 영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생산시설 확대 압력에 대비한 유연한 대응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