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내 특허관리전문회사(NPE)들의 한국 대표 반도체 기업을 겨냥한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특허권 보호 강화 기조에 따른 것인데,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소송 대응에 따른 부담을 키우고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전략에도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거란 분석이 나온다.
14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미국계 NPE 모노리식3D은 지난해 11월 고대역폭메모리(HBM) 설계 기술과 관련해 SK하이닉스에 특허침해 소송을 냈다.
모노리식3D는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납품하는 HBM2E(3세대), HBM3(4세대), HBM3E(5세대)가 자신의 계쟁특허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법원에 침해 여부 확인, 고의 침해 판단 및 손해배상, 예비적 금지명령 및 영구적 금지명령 등을 청구했다. 한국지식재산보호원은 이번 소송에 대해 “3D 적층 기술이 낸드플래시와 HBM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만큼, 낸드플래시 영역으로 분쟁이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모노리식3D가 보유한 계쟁특허가 모두 2024년부터 지난해 사이 등록된 최신 특허인 만큼, 2013년부터 HBM을 개발해 온 SK하이닉스를 상대로 소송 성립이 쉽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특허상표청(USPTO)에 따르면 모노리식3D는 총 461개의 미국 특허 자산을 보유 중이다.
중국계 NPE인 어드밴스드 메모리 테크놀로지(AMT)는 지난해 1월, SK하이닉스가 부스터 회로를 비롯해 자사 핵심 특허 4건을 침해했다면서 미 텍사스 동부 연방지방법원에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네트워크 시스템 테크놀러지도 같은해 10월 SK하이닉스가 ‘칩 내 네트워크(NOC)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국 텍사스 서부지방법원에 소를 제기했다.
삼성전자도 예외가 아니다. 2023년과 2024년 두 차례에 걸쳐 넷리스트에 총 4억2115만 달러(약 6300억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넷리스트는 2021년 SK하이닉스와도 4000만 달러(약 600억원) 규모의 합의를 끌어낸 바 있다.
넷리스트는 지난해 9월 삼성전자, 구글, 슈퍼마이크로컴퓨터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한적 수입 금지 명령 및 판매 중지 명령을 발부해 줄 것을 요청했다. 미국 ITC는 이번 소송과 관련해 지난달 29일 보도자료를 내고 “미 ITC에 소속된 행정법 판사 중 한 명에게 해당 사건을 배정할 것”이라면서 “조사 완료 목표일은 조사 개시 후 45일 이내로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NPE는 실제로 제품을 생산하거나 기술을 활용하지 않지만, 과거 등록된 포괄적이고 모호한 특허를 활용해 대기업을 공격하면서 ‘특허괴물’ 등으로 불린다. 트럼프 행정부의 친특허권자 정책이 NPE의 승소 가능성을 높이면서 무분별한 소송이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2011년 특허무효심판(IPR) 제도를 도입해 무분별한 특허 소송을 억제해왔다. IPR은 피소 기업이 미국 특허청 산하 특허심판원(PTAB)에서 특허의 유효성을 신속히 다툴 수 있는 핵심 방어 수단 역할을 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 특허청은 IPR 개시 요건을 엄격히 적용하며 제도의 실효성을 약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동일 특허를 둘러싼 소송이 진행 중이거나, 절차 남용 가능성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IPR 신청을 재량적으로 거부하는 사례가 급증한 것이다. 종전 30% 수준이던 IPR 개시 거절률은 지난해 9월 신임 특허청장 취임 이후 90% 수준으로 급등했다.
이들 기관은 넷리스트가 삼성전자 등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소송과 관련해서 지난해 11월 미 ITC에 강력한 특허집행이 공공이익에 부합한다는 취지의 공동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소모적인 특허소송이 급증하면서 연구개발(R&D) 투자와 생산능력(CAPA) 확장, 공급망 안정화 등이 차질을 빚을 거라는 염려도 커진다. 장기적으론 기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거라는 목소리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등에 업은 NPE들의 공격에 개별 기업이 로펌 고용이나 특허 포트폴리오 강화 수준으로 대응하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 구조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