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무역 불확실성에 중동전쟁까지 벌어지면서 수출경쟁 심화와 내수침체까지 겹친 삼중고로 산업계가 신음하고 있다. 내수와 수출의 불확실성이 짙어지고 투자시장의 자금도 얼어붙었다. 그래도 옥석가리기가 본격화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나가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유례없는 위기에 주눅 들기보다 뚝심 있게 기술을 혁신하며 새로운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그들이다.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가 빛나는 아이디어로 주목받는 알짜배기 기업들을 만나본다.
이른바 ‘성시경 막걸리’로 불리는 경탁주는 지난해 12월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가 개최한 ‘K-술 트렌드 어워즈 2026’에서 종합 3위를 차지했다. 페어링·대중성에서 1등급, 상품성에서 2등급, 디자인·브랜딩에서 3등급을 받으면서 전체 66종 출품작 가운데 톱3에 이름 올린 것.
아울러 경탁주는 최근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경탁주 로제 12도’ 제품이 탁주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경탁주 12도’ 제품이 론칭 첫해인 2024년과 지난해 같은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으니 3년 연속 국내 탁주의 정상을 지킨 셈이다.
이러한 경탁주를 빚는 곳이 2023년 8월 주류제조판매 스타트업으로 탄생한 제이원(J1) 농업회사법인(이하 제이1)이다. 취향 존중의 시대, 다양한 주종을 기획하고 개발하겠다는 목표로 문을 연 이 회사는 경탁주는 물론 리큐르 ‘시에가(SIEGA)’로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에가 역시 이번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우리술 리큐르 부문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술을 ‘가장 솔직한 언어’라고 정의 내리는 황재원 제이1 대표를 만나 전통주의 가능성에 함께 취해봤다.
◆와인소믈리에 강의 듣던 대학생… 의구심이 꿈이 되다
황재원 대표는 자신의 주량을 알지 못한단다. 좋은 사람과 맛있는 술, 그리고 끊이지 않는 대화가 있는 자리라면 주량의 한계를 마주한 적이 아직 없다는 것. 자칭 타칭 애주가 그 자체인 그는 성인이 되고부터 술과 사랑에 빠졌다.
그는 “대학 시절 와인 소믈리에, 워터 소믈리에 같은 강의를 수강하고 개인적으로 맥주도 공부했다”며 “그렇게 술에 대해 알면 알수록 한국 사람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주종은 한국 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추억했다.
그러던 중 자주 방문하던 바에서 바텐더 뒤에 진열된 술 가운데 우리나라 술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왜 그럴까’ 의구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재료로 빚는 술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
그 뒤 온라인 쇼핑몰인 컬리에서 상품기획자(MD), 네이버에서 전통주 파트 매니저, 수제맥주회사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신사업팀장 등을 역임하고 그 사이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도 취득하면서 꿈은 더욱 구체화 됐다.
특히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에서 전통주 브랜드 ‘마크홀리’의 탄생과 성장을 총괄하며 양조장의 기틀을 닦는 기초 작업부터 제품 출시와 운영까지 전 과정을 직접 경험했다. 황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술을 빚고 고객에게 제품이 닿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술이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이름 걸고 만들겠다는 사명… 경탁주 이어 시에가 대박
이러한 치열하고도 가슴 벅찬 경험들을 자양분 삼아 황 대표는 제이1을 설립했다. 그는 “전 세계가 한국의 식문화에 열광하는 상황에서 온라인 마켓의 유연한 확장성을 결합한다면 신생 브랜드도 빠르게 팬덤을 확보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며 “규제 완화라는 시대적 흐름과 전 세계적인 K-컬처 열풍이 맞물린 만큼 우리 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제이1이라는 사명은 황 대표의 이름 ‘재’의 이니셜 J, ‘원’과 영어 발음이 같은 숫자1이 결합됐다. 이름을 걸고 타협 없이 제품 하나하나를 만들겠단 의지를 담았다.
첫 상품부터 대박이 났다. 가수 성시경의 주류 브랜드 ‘경(璄)’과 협업, 레시피를 공동 개발하고 빚어낸 경탁주가 2024년 2월 출시하자마자 품절대란을 일으켰다. 약 10개월 준비 기간 동안 20회 이상 레시피 테스트를 거친 진심이 통했다. 황 대표는 성시경과 함께 질감과 향, 맛의 밸런스를 찾기 위한 테이스팅도 반복했다.
경탁주의 성공에 취하지 않고 그해 7월 리큐르 브랜드 시에가를 출범했다. SIEGA는 스페인어로 추수 그리고 수확한 작물을 뜻하며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며 고유한 취향을 발견하는 기쁨을 선사하겠다는 목표 아래 탄생했다. 국내산 쌀 100% 증류원액에 자연의 풍미를 담은 술로 지금까지 7종(배향·계피향·매실향·자두향·청사과향·박하향·포도향)이 나왔다.
황 대표는 “시에가를 정식 출시하기 전 반응을 살피기 위해 참여했던 주류 박람회가 기억에 남는다.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던 현장 반응 덕분에 준비한 수량이 조기 완판됐다”며 “우리 술인 리큐르를 대하는 대중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한국 리큐르의 재발견’이라는 가능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날의 확신은 브랜드가 나아갈 방향의 이정표가 됐다”고 말했다.
◆‘종합 주류 기업’ 지향하는 이유… “페르소나 술 만나도록”
대부분 주류 브랜드는 단일 주종에 집중하며 전문성을 강조한다. 반대로 제이1은 ‘종합 주류 기업’을 지향한다. 탁주인 경탁주, 리큐르인 시에가의 성공에 이어 이 회사는 현재 우리나라 쌀로 만든 라이스 위스키를 준비 중이다.
황 대표는 “단순히 품목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초개인화된 취향의 시대에 다채로운 주류 경험을 제안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며 “주종의 경계를 허물고 고객이 페르소나와 같은 술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그 유연하고도 폭넓은 시도 자체가 우리만이 가진 독보적 경쟁력이자 도전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제이1의 회식은 특별하다. 임직원들이 평소 접하기 힘든 희소성 높은 술을 직접 가져와 함께 시음하며 각자의 감상을 공유한다. 이러한 자리가 곧 제이1이 만드는 술의 깊이로 이어진다는 믿음이다.
황 대표는 “우리 땅에서 난 재료라는 뿌리는 지키되 세계적인 주류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혁신적인 시도를 이어가려 한다”며 “전통의 익숙함과 현대적 감각이 만났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새로운 주류 문화를 제이1만의 색깔로 정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술 스펙트럼 넓힐 것… 술은 가장 솔직한 언어”
황 대표의 목표는 제이1을 통해 우리나라 술의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것이다. 단순히 술을 파는 것을 넘어 모두가 각자의 취향에 맞는 술을 가장 편안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건강하고 다채로운 주류 문화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그린다.
그는 “한국적인 재료를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 술이 가진 본연의 가치를 현대적인 감각과 결합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주류 문화를 형성하고 싶다”며 “한국 술도 이렇게 세련되고 다양할 수 있구나 라는 인식이 가능하도록 우리 술의 새로운 지표를 새우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황 대표에게 그만의 술에 대한 정의를 부탁했다. 그는 “저에게 술이란 가장 솔직한 언어”라며 “만드는 이의 정성과 진심은 결코 술맛을 속일 수 없고 마시는 이의 마음은 가장 편안한 상태로 무장해제 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탁주-시에가 더 맛있게 즐기는 방법은?
황재원 제이1 대표는 경탁주와 함께하는 최고의 안주로 브리치즈와 회를 꼽았다. 그는 “경탁주는 브리치즈의 고소함과 환상적 마리아주를 이룬다”며 “기분 좋은 단맛 덕분에 신선한 회와 페어링해도 맛의 밸런스가 훌륭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첫 잔은 원주 그대로의 진한 풍미를 느끼고 두 번째 잔은 얼음을 곁들여 부드럽게 변화하는 탁주의 질감을 만끽하길 권했다.
시에가에 대해서는 “제품별 특유의 향으로 육·해·공 어떤 요리와도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올라운더”라며 “먼저 코끝으로 전해지는 향을 충분히 즐긴 뒤 온더락으로 칠링해 마실 때 가장 매력적이다. 높은 도수가 부담스럽다면 탄산수를 더해 청량한 하이볼로 가볍게 즐겨도 좋다”고 추천했다. 특히 시에가는 취향에 따라 나만의 레시피를 완성할 수 있도록 맞춤형 가이드를 제공해 마시는 즐거움에 발견하는 재미를 더했다고.
황 대표는 주종에 관계없이 술을 가장 맛있게 즐기는 비결도 공유했다. 그는 “다양한 술을 접하며 자신의 미각을 탐험하고 그 미묘한 차이에 대해 곁에 있는 이들과 열띤 대화를 나누는 과정 자체가 술맛을 완성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