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광장] 책임은 꼭 투자자의 몫인가

아침 출근길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이 제법 서늘해졌다. 맹렬했던 지난 여름이 언제였냐는 듯 계절의 변화는 빠르다. 영원할 것 같던 열기도 결국 흐르는 시간 앞에서는 맥없이 자리를 내어주기 마련이다.

 

계절의 더위는 그렇게 때가 되어 잊혀 가건만, 지난 여름 우리 증시를 태워버릴 듯 번졌던 불길은 여전히 뜨겁게 남아 있다. 그 중심에 섰던 ‘단일종목 레버리지’. 거품은 허무하게 꺼졌지만,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은 개미들의 속은 여전히 한여름의 열병처럼 타들어가고 있다.

 

시작의 명분은 그럴듯했다. 해외에는 이미 국내 주식 기반의 레버리지 상품이 상장돼 거래되는데 정작 안방에서는 투자할 수 없다는 규제 비대칭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였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서학개미의 발길을 국내로 돌리고, 자본시장의 매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청사진도 앞세웠다. 금융위원회는 입법예고 불과 4개월 만인 지난 5월 레버리지 상품을 시장에 내놨으나 특정 대형주에 대한 의존도와 변동성이 큰 국내 증시의 체질적 한계는 명확했다. 개인 매매 비중이 높은 종목을 기초자산 삼아 진폭을 배로 키운 상품의 출시는 과열과 투기적 쏠림이라는 결과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예상대로 시장의 문이 열리자마자 판은 순식간에 투기판으로 변질됐다. 상장 첫날에만 11조원에 달하는 거래대금이 몰리며 시중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려 들였다. “더 늦기 전에 올라타야 한다”는 환호 속에 대형주 쏠림과 변동성은 극에 달했고, 증시가 흔들릴 때마다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시장은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냐”는 아우성으로 뒤덮였다. 

 

변동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금융당국은 도입 50일 만에 부랴부랴 브레이크를 밟았다. 예탁금을 올리고 사전 의무 교육을 강화하는 등 뒤늦게 규제 밸브를 잠그자, 시장은 언제 불타올랐냐는 듯 얼어붙었다. 제도 도입 단계에서 통제하지 못한 부작용을 사후 규제로 틀어막으면서 시장 활성화는커녕 왜곡만 키운 꼴이 된 셈이다. 

 

졸속 행정의 실상은 당국 수장의 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6월 단일종목 레버리지를 두고 “당시 급하게 준비했던 것은 맞다”며 “어떻게든 그때 드러누워서 막았어야 했나 개인적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물론 자본시장에서 발생하는 손실의 무게는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위험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과열에 편승한 대가는 냉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위험 구조에 따른 부작용이 충분히 예견됐음에도 면밀한 보완책 없이 상품 출시를 허용하고, 시장 왜곡을 초래한 정책적 판단 착오까지 자기책임 원칙으로 면책될 수는 없다. 상품을 내놓은 지 불과 두달 만에 제도를 뜯어고쳐 빗장을 걸어 잠근 행태는, 출발선에서부터 정책의 안전판이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시장을 달궜던 열풍은 사그라들고 계절마저 차게 식었지만, 설익은 정책이 남긴 서늘한 대가 앞에서 당국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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