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광장] 지갑 열기가 두려운 세상

“요새는 기사식당도 비싸. 전에는 7000원이면 한 끼를 든든하게 먹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만원도 더 줘야 한다니까.”

 

 요즘은 둘 이상 모이면 물가 얘기다. 최근 만난 택시 기사 50대 김모씨도 ‘밥 한끼 먹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주차는 물론 백반을 먹어도 1만원 이상 지출한다는 내용이었다. 요즘에는 비교적 저렴한 편의점 도시락을 먹을까 고민 중이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외식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의 가격 정보 종합 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냉면, 김밥 등 대표 외식 품목 8종의 서울 지역 평균 가격은 1년 전보다 모두 올랐다. 냉면은 한 그릇에 1만1462원으로 7.2%, 김밥은 한 줄에 3323원으로 6.4% 올랐다. 또 비빔밥은 한 그릇에 1만769원으로 5.7% 올라 만원으로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됐다. 푸드테크 기업 식신의 ‘2024년 1분기 모바일식권 점심값 통계’에 따르면, 전국 일반식당 평균 결제 금액이 1만원을 돌파했다.

 

 겁이 나는 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점이다. 식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프랜차이즈 기업이 이를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맥도날드는 이날부터 16개 메뉴 가격을 평균 2.8% 올리기로 했다. 빅맥 세트 가격은 6900원에서 7200원으로 올랐다. 피자헛도 갈릭버터쉬림프, 치즈킹 가격을 2만9900원에서 3만900원으로 인상했다. 이미 고피자는 피자 단품 가격을 1000원씩 올려 판매하고 있다. 앞서 KFC와 쉐이크쉑버거, 롯데리아 등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이미 가격 인상을 단행한 바 있다.

 

 ‘런치플레이션’(점심+인플레이션)이라는 말도 나온다. 식비 부담이 커지면서 직장인들에게 중요한 건 더이상 맛이 아닌 가격이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직장인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구내식당이나 편의점으로 향한다. 최근 신한은행이 발간한 ‘보통 사람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인 중 68.6%가 점심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남성의 경우 편의점, 구내식당을 이용하거나 아예 굶는 사례도 많았고, 여성은 음식점 상품권이나 기프트콘을 이용하는 사례가 흔했다.

 

 사실 혼자 점심 한 끼는 때울 수 있지만 가족들만큼은 좋은 음식을 먹게 해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하지만 치솟는 물가에 좋은 마음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빠듯한 생활비에 기념일이 많은 가정의 달이 두려워진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 맞춰 자녀를 위한 선물을 사고 부모님 댁에 들러 용돈을 드리고 나면 텅텅 빌 지갑부터 걱정되기 때문이다. 주부들이 많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어린이날도, 어버이날도 기쁘기보다는 부담된다”, “밥값이 너무 비싸 외식 대신 집에서 해서 먹을까 고민 중”이라는 등의 글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집밥으로 시선을 돌려봐도 한숨이 나오는 건 매한가지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밥상물가와 직결되는 신선식품지수가 전월보다는 3.7% 하락했지만 전년 동월 대비로는 19.1% 오르면서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사과, 배, 토마토, 양배추는 장바구니에 들어갔다 나오기 일쑤고, 5만원어치 장을 봐도 돌아가는 길의 장바구니는 가볍다.

 

 솟구치는 농산물 가격에 정부는 가격안정자금으로 1500억원의 재정을 투입했지만 농산물의 원가가 실제로 안정화됐는지는 미지수다. 기후변화는 반복될 상수이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농산물을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외식 물가를 끌어올릴 불안 요소도 남아있다. 정부가 고물가를 고려해 전기·가스 요금을 일단 동결했지만, 상승에 대한 불안은 남아있다. 또한 미래에 커진 부채가 부메랑처럼 돌아와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순간적인 상황만을 모면하는 해결책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실효성 있는 정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모두가 “국정의 우선순위는 민생 또 민생”, “민생 안정에 최선을 다하자”고 외쳤던 목소리를 기억한다.

 

최서진 기자 west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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