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논란, 급발진] 미국은 되고 한국은 안된다?…급발진 인정의 쟁점

4일 중구 시청역 교차로 인근에서 발생한 차량 인도 돌진사고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들이 3D 스캐너를 이용해 현장을 정밀 촬영하고 있다. 

 운전자가 주장하는 급발진을 인정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은 단 한 차례 배상이 진행됐지만, 국내는 전무후무하다.

 

 미국은 제조사가 재판 과정에서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차량 결함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고, 그러지 못하면 배상해야 한다. 같은 차량에서 비슷한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면 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조사한다. 미국의 유일한 급발진 인정 판례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명 ‘북아웃 소송’이다.

 

 2007년 진 북아웃이 운전하던 토요타 캠리가 오클라호마주 고속도로에서 급발진하면서 장벽을 충돌했다. 운전자는 중상을 입었고 동승자 1명은 사망했다. 미국 법원 배심원단은 2013년 10월 소송에서 피해자들에게 300만 달러 배상 판결과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산정하려 했다. 이에 토요타는 피해자들과 적극적으로 합의에 나섰다.

 

 소송 당시 소프트웨어 컨설팅업체 ‘바 그룹’은 캠리의 급발진 원인으로 엔진 스로틀 컨트롤 시스템(ETCS)의 소프트웨어 결함을 지목했다. 이는 급발진 원인에 대해 어느 정도 명확한 분석이 이뤄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토요타의 신속 합의, 급발진 의심 차량 리콜뿐 아니라 2014년 미국 법무부에 급발진 문제 은폐 등에 관해 벌금 12억 달러를 냈다는 사실도 급발진 문제를 사실상 인정한 조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토요타는 급발진을 공식 인정하지 않았다. ‘소비자 권익을 고려해 합의한 것’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리콜과 소송 합의금, 벌금 등으로 지급한 금액이 총 40억 달러에 달했지만 정작 급발진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모순을 남겼다. 이처럼 급발진 문제를 인정할 경우 완성차업체가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어 이들에게 급발진은 금기이자 미해결 과제다.

 

 한국에서는 급발진 배상 사례가 없다. 법원에서 급발진을 인정한 사례도, 업계의 언급도 없다. ‘과학적으로 급발진 여부가 규명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국내에서 급발진 사고가 발생할 경우 소비자가 입증해야 한다.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민간인이 이를 입증해야 한다는 사실에 현행 법체계에 대한 문제가 지적되기도 한다.

 

 지난 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윤종군(더불어민주당 안성시) 의원이 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접수된 급발진 신고 236건 중 실제 급발진으로 인정된 사례는 없다. 평균적으로 매년 30건 정도가 급발진 의심 사고로 신고되고 있다.

 

 소비자가 직접 급발진을 입증하기는 불가능하다. 이에 급발진이 사고 원인이 아님을 제조사가 직접 입증해야 한다는 취지의 이른바 ‘도현이법(제조물 책임법 일부 법률개정안)’ 제정 필요성이 대두한다.

 

 도현이법은 2022년 강원도 강릉에서 발생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로 이도현군의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논의가 시작됐다. 60대 여성이 몰던 티볼리 차량 사고로 운전자는 크게 다치고 동승자였던 도현군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블랙박스에는 브레이크가 안 된다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녹음돼 있었다. 당시 도현군의 아버지가 요구한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시 ‘결함 원인 입증책임 전환’ 제조물책임법 개정에 관한 재청원은 지난달 28일 5만명의 청원 성립 요건을 채웠다.

 

 21대 국회에서는 여야가 합심해 도현이법을 발의했지만, 소관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산업계 영향을 우려해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이후 관련 법안 5건이 발의됐으나 회기 종료로 자동 폐기됐다.

 

정가영 기자 jgy93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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