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광장] ‘금(禁)하다=가장 좋다?’…디지털 마약 ‘숏폼’ 이대로 괜찮을까

최근 충격적인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봤다.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모들이 한자 뜻을 몰라 어린이집 안내문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현직 교사의 얘기다. 이 교사에 따르면 일부 학부는 ‘이러한 내용을 금합니다’라는 문구 속 ‘금’을 禁(금할 금)이 아닌 金(쇠 금)으로 읽고 ‘가장 좋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럴 수 있나 싶지만 찾아보니 자주 있는 일이다. ‘우천(雨天)시 변경될 수 있다’는 문구에 ‘우천시가 어디요?’라고 질문하거나 가정통신문에 ‘체험학습 중식(中食) 제공’을 중국음식으로 알아듣고 학교에 민원을 넣었다는 부모가 있을 정도다.

 

원인으로는 ‘숏폼(short-form)’이 지목된다. 숏폼은 5~10분 이내의 짧은 영상에 핵심 재미만을 담아내는 콘텐츠다.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등이 대표적이다. 앱 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가 지난해 숏폼 플랫폼과 OTT(넷플릭스, 티빙, 쿠팡플레이 등) 플랫폼 사용시간을 비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인당 월평균 숏폼 이용시간은 46시간29분으로 OTT(9시간14분) 대비 5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전에는 ‘개봉런’, ‘본방사수’를 외치며 즐겼던 영화나 드라마도 줄거리만 짧게 요약한 리뷰 콘텐츠로 즐기는 문화가 된 것이다.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관심이 높은데, 한국리서치의 ‘숏폼 콘텐츠 이용 현황과 인식, 규제 필요성’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1000명) 중 75%는 숏폼 콘텐츠를 시청한 경험이 있으며 그중 18~29세 비중이 93%에 달했다.

 

문제는 5~10분 내 주목도와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숏폼에 짧고 자극적인 단어가 많이 사용된다는 점이다. 어른들이 못 알아듣는 ‘MZ 용어’도 대부분 이러한 숏폼에서 나온다. 갈수록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나잇대는 낮아지는데 글자보단 영상, 앞뒤 상황 설명 없이 단순히 자극적이고 단발적인 미디어를 즐기니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긴 글을 읽고 이해하려는 능력과 습관이 부족하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달 발표한 ‘2023년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 결과’에 따르면 국어에서 ‘보통 학력’ 이상 등급을 받은 고2 비율은 2017년 75.1%에서 지난해 52.1%까지 감소했다. 절반이 보통 학력 기준에 못 미친다는 얘기다. 반면 국어 기초 학력 ‘미달’ 수준에 해당하는 고2 비중은 2017년 5%에서 지난해 8.6%로 늘었다. 2011년 이후 최고치며 지속 증가 추세다.

 

과거 90년대까지 교육과정에서 의무였던 한문 교육이 이제는 ‘원치 않으면 배우지 않아도 되는 시대’라는 점도 한몫을 한다. 국어 단어의 60%는 대부분 한자어다. 한자를 모른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말하는 일상어에도 은연중 한자어가 포함돼있다. 앞서 말한 ‘금하다’, ‘우천시’ 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문 교육은 줄어들고 각종 SNS와 영상매체 사용량은 대폭 늘어나고 있다. 이대로라면 젊은 세대의 문해력은 지속 후퇴하고, 한자어에 익숙한 기성세대와 서로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해 소통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뇌가 완전히 성장하지 않은 어린아이들의 경우엔 숏폼과 같은 미디어에 오래 노출되면 뇌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자극적인 콘텐츠를 이용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문해력뿐 아니라 우울증, 불만,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만 켜면 쉽게 접근할 수 있기에 ‘디지털 마약’, ‘숏폼 중독’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문해력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 난독연구센터장 매리언 울프 교수는 “문해력 저하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어느 때보다 글을 읽는 환경 조성과 건전한 미디어 습관 형성이 필요한 때다. 특히 문해력 수준이 떨어져 있는 학생들에 대한 교육 당국의 체계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신정원 기자 garden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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