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사람과 좋은 물이 좋은 맥주를 만듭니다.”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의 깊은 산 속에 자리 잡은 수제 맥주 브랜드 ‘화이트 크로우(White Crow)’는 이 철학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지 7년째다. 캐나다 로키 산맥 국립공원 인근에서 자란 레스 팀머멘즈(Les Timmermans) 화이트 크로우 브루잉 컴퍼니 대표가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건 13년 전이다. 아내와 함께 평창에 정착하면서 홈브루잉을 시작했고, 그때의 작은 양조장이 오늘날 전국의 맥주 애호가들이 찾아오는 공간이 됐다. 화이트 크로우는 평창의 옛 지명인 백오현(하얀 까마귀 마을)에서 착안해 하얀 까마귀처럼 특별하고 진귀한 맥주를 담겠다는 레스 대표의 의지다. 그는 수익보다 품질을 추구하는 뚝심 있는 철학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가슴을 적셔주길 바란다. 최근 경기도 오산 오색시장에서 열린 제12회 야맥축제에서 레스 대표를 직접 만나 맥주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
화이트 크로우는 산업화된 대량 맥주가 아닌, 산속 깊은 곳에서 자연과 사람, 맥주가 교감하는 공간을 지향한다. 이곳에서 사용되는 물은 강원도 암반수를 직접 끌어올린 천연 지하수다. 이는 단순한 수질의 문제가 아니라, 맥주의 깊은 맛과 건강까지 책임지는 중요한 선택이다.

레스 대표는 “화이트 크로우 맥주는 강원도 평창의 천연 암반수를 사용한다”며 “산에서 끌어올린 지하수인데 정말 깨끗한 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물 덕분에 우리가 만든 맥주는 맛도 깊고, 건강 이슈에서도 자유롭다”며 “실제로 이런 물을 독점적으로 쓰는 브루어리는 국내에서도 드물다”고 강조했다.
화이트 크로우의 생산지이자 펍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다. 강원도 평창 산속에 위치해 승용차를 타지 않는 이상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힘든 곳이다. KTX 둔내역에서 내려 택시의 힘을 빌려야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오히려 특별하게 만든다. 방문객들은 주변 펜션, 캠핑장을 연계한 숙박 프로그램을 통해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며 천천히 맥주를 음미한다. 스키 리조트와도 가까워, 계절마다 다른 풍경과 함께 맥주를 즐기는 매력이 있다. 또한 숙소에 맥주를 가져가 마시기 위해 포장 방문객의 방문도 끊임없다. 이것이 맥주를 천천히 음미하고 쉬어가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레스 대표의 의지이다.

레스 대표는 “13년 전 처음,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창업자가 평창에서 아내와 함께 홈브루잉을 시작한 것이 시초”라며 “스키 리조트 근처에서 시작한 작은 양조가 점점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의 화이트 크로우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내에 대해 “영어 교사 시절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며 “지금은 맥주를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소중한 조력자이자 인생의 동반자”라고 자랑을 해 사랑꾼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저는 캐나다 캘거리 근처, 로키 산맥 국립공원 인근에서 자랐습니다. 그곳의 자연과 평창의 산세가 매우 닮아 있다”며 “그래서 한국에서도 자연과 어우러지는 맥주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 양조에 필요한 기술은 캐나다와 미국에서 체계적으로 익혔고, 그 경험을 한국에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맥주 그 이상…화이트 크로우를 경험하라
맛은 해외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화이트 크로우는 저명한 국내외 대회에서 수차례 수상 내역을 보유하고 있다. 2019년 아시아 비어 챔피언십(Asia Beer Championship)에서 대표 맥주인 고라니 브라운(Gorani Brown)이 브라운 에일 부문에서 은메달을 수상하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고, 2020년에는 같은 대회에서 평창 골드(Pyeongchang Gold Ale)가 골든 에일 부문 금메달, 고라니 브라운이 다시 한 번 다크/브라운 에일 부문 은메달을 수상한 바 있다. 또한 2021년에는 화이트 크로우 IPA(인디언 페일 에일)가 대한민국 주류대상을 수상했다.
실제로 최근 오산 오색시장에서 열린 야맥축제에서 화이트 크로우 부스는 유독 긴 줄이 형성돼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대전에서 올라온 한 참가자는 “화이트 크로우의 라인업은 강원도의 물을 마시는 것처럼 깊이감이 느껴지고 어느 하나 빠지는 라인업이 없다”며 “이미 맥주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정평이 나 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지난해 말부터는 미국으로 수출도 시작했다. 워싱턴과 오리건의 바틀숍과 레스토랑을 통해 첫인사를 건넸고 현지 호응도 뜨거운 것으로 알려졌다.
◆대량 제조보다는 소량 제조로 품질 최우선주의
화이트 크로우의 맥주는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는 만날 수 없다. 브랜드의 성장보다는 퀄리티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스 대표는 “(대량 생산으로)맛과 품질이 무너지면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며 유통망 확대 대신 현장 중심의 체험과 공급에 집중하겠다는 목표를 명확히 밝혔다. 화이트 크로우를 알게 된 사람들 대부분은 타인의 추천을 통해 접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광고가 아닌 순수 입소문을 통해서 브랜드의 가치를 알리고 있는 셈이다.
레스 대표에게 앞으로 편의점에서 맥주를 공급할 계획에 대해 묻자 단호하게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화이트 크로우는 하이 퀄리티 수제맥주만을 목표로 한다”며 “대량 생산이나 수익 중심의 유통 전략은 우리 철학과 맞지 않는다. 우리는 ‘맛과 품질’이 우선이고 그 기준을 해치고 싶지 않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레스 대표는 맥주를 단지 술이 아니라 사람들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여긴다. 그는 어린 시절 캐나다에서는 맥주가 가족과 친구, 지역 공동체를 이어주는 것을 손수 경험했다. 그 기억을 한국에서도 실현하고자 브루어리를 시작했다. 그런 만큼 화이트 크로우라는 공간은 단순한 술집이나 공장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장소로 기능한다.
레스 대표는 “우리의 슬로건은 좋은 사람, 좋은 장소, 좋은 맥주”라며 “맥주는 단지 술이 아니라 사람들을 연결하는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저에게 맥주는 어린 시절부터 교류와 기쁨의 매개체였고, 그 철학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이곳 화이트 크로우”라고 말했다.

◆맥주의 목적지이자 맥주 문화 정착이 목표
화이트 크로우는 어느덧 강원도를 대표하는 한 지역의 브루어리가 됐다. 물론 수도권 등 일부 매장에 공급하고 있지만 레스 대표의 바람은 직접 찾아가서 마셔야 하는 ‘맥주의 목적지’가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강원도 현지에서 체험하며 즐길 수 있는 맥주 문화를 만드는 게 꿈이다.

레스 대표는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이 일을 해왔다”며 “가끔은 워라밸도 없고 지치기도 하지만 이렇게 인터뷰를 하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스스로 자랑스럽다. 언젠가 평창에서 산을 바라보며 ‘우리는 제대로 된 맥주를 만들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았어’라고 말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글·사진=김재원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