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월 3일 오전 9시 1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남인천영업소에서 CDMA 세계 1호 가입자가 탄생했다.
CDMA는 하나의 주파수 대역을 고유 코드로 구분해 여러 사용자가 동시에 쓰면서도 서로 간섭 없이 통화할 수 있게 하는 2세대 이동통신(2G) 핵심 기술이다.
삼성전자가 CDMA폰 ‘SCH-100’을 출시하고, 한국이동통신이 4월 12일 서울과 수도권에서 상용 서비스를 시작하며 한국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 이동통신을 상용화한 국가가 됐다. 이후 9개월 만에 전국망이 구축되고, 이동통신은 전 국민의 인프라로 빠르게 확산됐다.
CDMA 상용화 이후 구축된 전국 단위 통신 인프라는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성장의 토대가 됐다.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1998년 1000만명을 넘어선 뒤 빠르게 증가해 1999년에는 유선 전화를 추월했다. 네트워크 확산은 휴대폰∙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와 반도체 등 핵심 소재 분야의 성장을 촉진했다. 또 게임∙음악∙드라마 등 K-콘텐츠 열풍의 토대가 됐다.
실제로 국가통계포털,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실제로 국내총생산(GDP) 내 정보통신산업 부가가치 비중은 1996년 2.2%에서 지난해 13.1%로 확대됐다. 규모로는 17조8000억원에서 304조원으로 증가했다.
반도체, 단말기 등을 포함한 IT 산업 수출은 1996년 412억 달러에서 지난해 2643억 달러로 약 6.4배 증가했다. 전체 수출 규모에서 30% 이상을 꾸준히 차지하며 대한민국 수출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CDMA 상용화는 민관 협력으로 이뤄낸 세계 최초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대한민국 이동통신 서비스는 1984년 한국이동통신서비스의 카폰(차량전화)에서 시작됐다. 이후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국내 최초 휴대형 이동전화 서비스가 시작되며 아날로그 기반 이동통신(1G) 대중화가 본격화됐다.
그러나 1990년 대에 접어들면서 이동통신 시장은 통화 품질 저화와 용량 부족 문제에 직면하며 디지털 전환이 시급해졌다. 당시 글로벌 시장에서는 TDMA(시분할 다중접속) 방식이 사실상 2G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CDMA는 상용화 사례가 없는 미지의 기술이었다.
CDMA는 이론적으로 TDMA보다 더 많은 이용자가 동시에 통화할 수 있었지만,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신호 처리와 고성능 디지털 기술이 필요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한국은 TDMA 대신 더 높은 수용 용량과 기술 자립 가능성을 가진 CDMA를 선택했다.
정부는 CDMA 단일 표준을 선언하고, 한국이동통신을 비롯해 ETRI·삼성전자·LG전자 등과 함께 민관 공동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특히 한국이동통신은 네트워크 구축과 상용화를 맡아 기술을 실제 서비스로 구현했다.
CDMA 기술 개발이 한참 진행되던 시기, 통신 산업 지형도 큰 전환기를 맞았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제2이동통신 사업자 재선정과 한국이동통신 민영화가 동시에 추진됐기 때문이다.
1994년 공개 입찰을 통해 선경(현 SK그룹)이 한국이동통신을 시가의 4배에 인수하며 현재의 SK텔레콤이 탄생했다. 이는 통신 산업 내 경쟁 체제 도입이 CDMA 상용화를 앞당기는 동력이 됐다.
CDMA 상용화는 2024년 IEEE(국제전기전자공학협회)로부터 ‘IEEE 마일스톤’으로 인정받았다. 이는 ‘글로벌 ICT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며, 전기·전자·통신 분야에서 인류사에 기여한 혁신에만 부여된다. 트랜지스터 발명, 인터넷 탄생 등이 IEEE 마일스톤으로 등재돼 있다.
CDMA 상용화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압도적이었다. ETRI가 2002년 발간한 ‘CDMA 기술개발 및 산업 성공요인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CDMA 이동통신 산업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연평균 37.2% 고속 성장을 통해 누적 생산액 42조원을 기록했다. 또 생산유발효과 125조원, 142만명의 고용유발 효과를 가져왔다.
아울러 국내 이동통신의 기술적 기반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부품 국산화율도 70% 수준까지 향상시키는 등 국내 통신 산업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30년 전 CDMA라는 선택으로 전국을 연결하는 ‘통신 고속도로’를 구축했듯이 이제 대한민국은 데이터와 AI를 실어 나르는 ‘인공지능(AI) 고속도로’를 구축하는 전환점에 서 있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계 최초 CDMA 상용화가 대한민국 ICT 도약의 출발점이 되었듯, AI 인프라 구축은 다음 30년 대한민국 경쟁력을 좌우할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종훈 SK텔레콤 네트워크전략담당은 “AI 시대에는 네트워크가 단순한 데이터 전달 수단을 넘어, 데이터를 학습하고 처리하는 ‘지능형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며 “이는 제조·물류·의료·금융 등 전 산업의 생산성과 혁신 속도를 결정짓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