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세계 안내견의 날’이다. 1992년 세계안내견협회(IGDF)가 안내견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대중의 인식개선을 위해 지정한 날로, 매년 4월 마지막 주 수요일이라 올해는 29일이다.
안내견은 보통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어주는 시각장애인안내견을 일컫지만, 청각·지체장애인 및 정신질환자를 위한 도우미견도 있다. 명칭은 달라도 장애인과 환자 등 인간을 일상을 안내한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세계 안내견의 날을 맞아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및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를 통해 국내 안내견 및 도우미견의 현황을 알아보고, 안내견 및 도우미견과 함께하는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장애인도우미견협회서 육성… 전국 약 160두 활동 중
우리나라에서 안내견과 도우미견을 육성하는 곳은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와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뿐이다.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는 시각·청각·지체장애인 및 정신질환·뇌전증 환자 도우미견을 배출하고 있다. 각 단체에 따르면 올해 4월 현재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 출신 안내견은 전국에 93두,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출신 도우미견은 약 70두가 활동 중이다.
안내견도, 도우미견도 육성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생후 50일쯤부터 약 1년 동안 일반 가정에서 지내며 보통의 강아지처럼 사회화 과정(퍼피워킹)을 밟은 뒤 다시 각자 교육기관에서 각자 주특기에 맞는 훈련을 진행한다. 이후 안내견 및 도우미견과 함께하고 싶다고 신청한 이들 중 일정 조건을 갖춘 이들에게 배치가 된다.
안내견 및 도우미견에게는 스스로를 증명하는 조끼와 보조견증이 주어진다. 조끼를 착용하거나 보조견증이 있으면 어디든 동반 출입이 가능하다. 장애인 복지법 제40조 제3항은 ‘장애인 보조견을 동반한 장애인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공공장소, 숙박시설, 식품접객업소 등 여러 사람이 다니거나 모이는 곳에 출입하려는 때는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를 위반하면 300만원 이상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법률상으로 인간과 다름없는 셈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개라는 이유로 출입을 거부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
안내견도, 도우미견도 고령이 되어 신체 능력이 떨어지면 은퇴를 한다. 리트리버 등 대형견인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경우 보통 8~9살에 은퇴를 한다. 소형견 비중이 높은 청각장애인도우미견은 12~13세에 은퇴를 한다. 다만 건강, 특히 주특기를 유지하면 은퇴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청각장애인도우미견 ‘럭키’는 15살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직전까지도 보호자의 귀로서 임무를 다했다.
◆ “법 운운 반복되니 지겹고 피곤… 즉흥적인 삶 기대 버렸어요”
서울의 한 구청에서 근무하는 30대 공무원이자 시각장애인 현지수 씨는 12년째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출신의 안내견들과 지내고 있다. 신생아 때 의료 사고로 시력을 잃은 그는 대학 시절 처음 안내견 ‘하라’를 만나 10년을 함께했고 하라가 고령으로 은퇴를 하면서 2년 전부터 새로운 안내견 ‘난초’와 살고 있다. 그동안 등·학교, 출·퇴근 외에도 외출마다 안내견의 도움을 받아 왔다.
지수 씨는 “자주 다니는 길이라 익숙하다고 해도 갑자기 공사 중인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안내견이 알려주니까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다”며 “정서적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혼자가 아니라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으로 든든하다”고 말했다.
이어 “안내견과 함께하면서 다른 사람과 소통의 기회도 늘었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분들이 먼저 말을 걸어주기 때문”이라며 “대학 및 직장 생활을 할 때도 강아지가 있어서 교실 혹은 사무실 분위기가 온화해지는 걸 느낀다”고 덧붙였다.
지수 씨는 10년 전과 비교하면 안내견의 존재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예술의전당과 롯데 콘서트홀을 거론하며 문화 예술 공간은 대부분 안내견에 대한 대응이 매우 호의적이라고 엄지를 세웠다.
하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이며 여전히 안내견이 출입을 금지 당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수 씨는 “법적으로 안내견은 어디든 같이 갈 수 있다고 말씨름을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반복되면 지겹고 피곤할 따름”이라며 “아예 어딜 가든 먼저 연락을 해서 안내견과 같이 가도 되는지를 물어본 뒤에 가능하다는 곳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약 10년 전 1년간 미국에서 유학을 한 그는 “거기에서는 어디를 가든 안내견이 있다고 제지당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며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미국이 너무 그리웠다. 한국에서는 즉흥적으로 어딘가를 다니는 삶을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최근에는 업무상 필수교육을 이수해야 해서 교육장을 찾았는데 안내견과 입장을 제지당하기도 했다. 결국 담당자들끼리 소통을 하는 동안 수십 분을 하릴없이 대기해야만 했다.
지수 씨는 “안내견과 함께하는 시각장애인은 전체 시각장애인 중 5%도 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안내견을 데려올 수 있는 조건에 부합 하더라도 안내견과 동반 출입에 애로사항이 많은 현실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 “청각장애인 도우미견 인지도 더 낮아… 안내견의 날에도 문전박대”
세종 한국직업능력연구원으로 일하는 청각장애인 원서연 씨는 아주 큰 소리가 아니면 듣지 못한다. 성인이 되고 독립해서 살아보니 일상생활이 너무 불편하고 또 위험했다. 2018년 한국장애인도우미견센터에서 교육을 받은 청각장애인도우미견 ‘구름이’를 만나 8년째 함께하고 있다.
청각장애인도우미견은 초인종, 휴대전화 알람, 물 끓는 소리, 화재경보, 노크, 차량 경적 같은 소리를 들었을 때 주인에게 달려가서 점프를 하거나 발로 긁는 식으로 상황을 알린다.
서연 씨는 구름이를 만나기 전을 회상하며 “소리를 듣지 못하니까 진동으로 알람을 맞추고 잠이 드는데, 가끔 휴대전화가 굴러 떨어져 알람 진동을 못 느껴서 출근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등기우편을 받을 때 택배 기사님의 현관문 노크를 듣질 못해 우체국에 직접 방문해야 했다”며 “사실 최근에도 사정상 구름이를 집에 두고 외출을 했는데 뒤에서 다가오는 오토바이 소리를 듣지 못해 가벼운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구름이를 만나기 전, 우울증을 앓았고 어떻게 웃는지를 잊어버린 상태였다”며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는 친구가 생긴 뒤 안정감과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은 시각장애인 안내견에 비해 대중적으로 덜 알려졌다. 특히 대형견이 아닌 소형견 비중이 높아서 일반적인 반려견이라는 오해를 자주 산다.
서연 씨는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출입을 제한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난해 4월30일, 그해의 세계 안내견의 날이었다. 유명한 샤브샤브 음식점을 찾았는데 장애인 보조견 조끼와 증명서를 보여줬음에도 점주가 끝까지 입장이 안 된다고 했다. 그가 팔로 X자를 그리며 막는 모습이 얼마나 마음 아팠는지 모른다. 본사에도 연락을 했지만 끝까지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부족하다는 현실에 상처를 받을 때가 많지만 가끔씩 환대를 받을 때면 그래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에 위안을 얻는다.
서연 씨는 “최근 서울 강서구 발산역 근처 식당을 방문했을 때 사장님께서 구름이를 정말 반갑게 맞아주시고 간식과 물까지 챙겨주셔서 감동을 받았다”며 “도우미견에 대한 정보와 인식이 널리 알려져서, 장애인과 도우미견이 함께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식 개선을 위해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이날 이화여대에서 세계 안내견의 날 행사를 진행하며 학생들에게 안내견을 알린다. 또한 해마루반려동물의료재단과 손잡고 수의사 및 수의대생을 대상으로 안내견 인식 개선을 위한 무료 웨비나를 개최한다.
이번 웨비나는 박태진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장이 연자로 나서 안내견의 선발, 훈련, 배치, 은퇴 이후 관리까지 체계적 양성 과정 등을 알린다. 또한 시각장애인이자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프로가 동물병원 내에서 안내견과 시각장애인 보호자 응대법 등을 소개한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