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식품 중소기업에서 20년째 일하는 40대 후반 직장인 유모 씨는 최근 반도체 기업 성과급 뉴스를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회사에서 부장급으로 일하지만, 그의 현실은 ‘성과급 잔치’와 거리가 멀다. 2년 전 늦깎이 결혼을 했고 지난해 아들도 얻었지만, 청약으로 당첨된 서울 강북 신축 아파트 대출금 7억원이 여전히 어깨를 짓누른다.
유 씨는 “대기업 직원들이 많이 받는 게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다. 성과를 낸 만큼 보상받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다만 누군가의 성과급이 내 남은 대출금보다 크다는 뉴스를 보면, 같은 월급쟁으로 묶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유 씨가 말한 뉴스는 최근 산업계를 흔든 삼성전자·SK하이닉스 성과급 이슈다. 삼성전자 노조 측은 초과이익성과급 제도 개편과 함께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쓰고 상한을 없앤 구조가 알려지며 ‘역대급 보상’ 전망의 중심에 섰다.
일부 보도에서는 올해와 내년 영업이익 전망치, 성과급 배분 구조를 단순 대입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인당 성과급 규모가 각각 수억 원대에 이를 수 있다는 추산도 나왔다. 삼성전자 임직원 12만5000명, SK하이닉스 임직원 3만4500명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삼성전자는 1인당 약 7억9200만원, SK하이닉스는 약 12억5100만원 수준이라는 것이다. 급여까지 더하면 평균 삼성전자는 1인당 약 1억5000만원을 더하면 9억4200만원, SK하이닉스는 1인당 1억8500만원을 더해 약 14억3100만원이다. 중소기업을 포함한 대한민국 직장인 평균 연봉 약 5061만 원(2025년 경총 발표 기준)과 비교하면 격차가 엄청나다.
물론 성과를 낸 기업의 구성원이 더 큰 보상을 받는 것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반도체 산업은 고난도 기술 경쟁과 인재 확보가 기업 생존을 좌우하는 분야인 만큼 높은 성과급은 일정 부분 정당한 보상이다.
논란의 초점은 성과급 자체가 아니라 숫자가 드러낸 격차다. 유 씨는 “반도체 산업이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리는 것도 알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치열하게 일한다는 것도 안다”며 “그래도 평생 벌어도 쉽지 않은 돈이 성과급 추산액으로 오가는 걸 보면 허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월급쟁이 맞나”… 커지는 격차 체감
수억 원대 성과급 추산은 반도체 업계 밖 직장인들에게도 강한 체감으로 다가온다. 고물가와 고금리, 주거비 부담이 이어지는 가운데 ‘성과급 수억 원’이라는 숫자는 직장인 사회 전반에 강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대출을 끼고 내 집 마련에 나선 30~40대 직장인들에게 성과급 뉴스는 단순한 산업 뉴스가 아니라 생활비와 자산 격차의 문제로 다가온다. 중소기업 10년차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나는 10년을 버텨도 연봉이 크게 오르지 않는데 누구는 한 해 성과급만으로 집값을 움직인다”는 반응도 나온다.
유 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예전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차이가 있다는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제는 차이가 아니라 다른 세계 같다”며 “회사에서 오래 버티고 책임이 늘어도 보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성과급 뉴스를 볼 때마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되묻게 된다”고 했다.
이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직원들은 직장인이라고 묶기 어려울 만큼 격차가 커졌다는 생각이 든다”며 “뉴스를 볼 때마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한 게 보상으로 이어지는 시대는 끝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토로했다.
성과급 논란은 반도체 업계 내에서도 다른 결로 번지고 있다. 삼성전자에 다니는 30대 중반 김모 씨는 최근 회사 분위기를 “참을 만큼 참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 씨는 “SK하이닉스가 높은 성과급을 받는다는 소식이 나올 때마다 내부에서도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다”며 “회사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책임은 경영진에 있는데, 임직원에게는 비용 절감만 요구한다는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정부도 우려를 나타냈다. 삼성전자 노조 측이 성과급 협상 결렬 시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총파업을 예고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최근 기자단 백브리핑에서 “삼성전자의 성과가 협력기업과 인프라, 소액주주, 국민연금 등 사회 전체와 연결돼 있다”며 노사 양측의 성숙한 판단을 촉구했다.
김 씨는 “외부에서는 우리가 욕심을 부린다고 볼 수 있지만 내부에서는 회사가 미래 경쟁력을 지키려면 보상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며 “인재가 빠져나간 뒤에는 늦다”고 강조했다.
정희원 기자 happy1@segye.com
삼성전자가 노조의 불법 파업을 금지해 달라며 낸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의 첫 심리가 열린 29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하동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민경권 대한민국주주운동본부 대표가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을 반대하는 1인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삼성전자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조합원들이 최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앞에서 열린 투쟁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