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집단을 이끌며 그 안에서 임직원들로부터 특별 대우를 받는 것처럼 보여도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킨 후 총수들은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민주화 운동 폄훼 마케팅에서부터 총수 자신 또는 친족의 갑질 및 폭행 사건, 대규모 고객정보유출 등에 이르기까지 그 배경도 다양했다. 대체로 즉각적인 사과에 나선 경우는 드물었고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다다른 후 오너리스크가 커진 후에서야 대국민 사과를 했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이날 “스타벅스코리아의 부적절한 마케팅으로 인해 많은 분들께서 깊은 아픔과 분노를 느꼈다는 사실을 매우 무겁게 받아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스스로에게 잘못이 있다며 거듭 죄송하다고 한 정 회장은 다만 준비해둔 원고만 읽어내려간 후 퇴장했다. 앞서 스타벅스는 지난 18일 ‘탱크 데이’ 마케팅을 실시했는데 이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탱크 진압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같은 날 스타벅스가 사용한 ‘책상에 탁’이란 문구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경찰의 발표 내용을 떠올린다는 지적을 받았다.
책임자로서 대규모 총파업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대국민 사과를 한 총수도 있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전자 노조의 총파업이 가능성이 커지던 지난 16일 “회사 내부 문제로 불안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전 세계 고객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 “항상 저희 삼성을 응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또 채찍질 해 주시는 우리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조 등을 향해 "우리는 한 몸, 한 가족이다. 지금은 지혜롭게 힘을 모아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면서 “매서운 비바람은 제가 맞고 다 제 탓으로 돌리겠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부회장 시절이던 2020년 5월에도 경영권 승계 및 노조 문제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자녀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며 ‘4세 경영’ 포기를 선언한 데 더해 무노조 경영 방침도 공식 폐기했다. 삼성그룹의 준법경영 준수 여부를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외부 감사기구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꾸려진 것도 이 즈음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5월 SK텔레콤 해킹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해킹 사태가 터진 후 무려 19일 후에서야 이뤄졌다. 최 회장은 “사이버 침해 사고로 고객과 국민에게 불안과 불편을 초래했다”며 “SK그룹을 대표해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고 원인 파악 차원에서 전문가가 참여하는 보안 정보보호 혁신위원회를 구성해 개선 방안을 찾겠다고도 강조했다. 앞서 최 회장은2022년 10월 SK C&C(현 SK AX)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당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서비스 장애에 대해 사과한 바 있다.
총수 일가가 저지른 폭행 등 갑질 논란으로 대국민 사과를 한 경우도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은 총수 일가의 연이은 갑질 논란에 대해 두 차례나 머리를 숙였다. 조 선대회장은 2014년엔 장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과 2018년 조현민(조 에밀리 리) 한진칼 전 전무(현 한진 사장)의 물컵 투척 갑질 및 조현아 전 부사장 밀수 의혹 등에 대해 두 차례 대국민 사과를 했다. 조 선대회장은 2019년 3월 대한항공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재선임안이 부결되며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07년 경호원을 동원해 술집 종업원들에 대해 보복 폭행한 사건에 대해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사과문을 내고 잘못을 인정하기도 했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