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등장한 BMW Z3와 현대자동차 티뷰론은 이제 나란히 서른 살을 바라본다. 국내에서 처음 판매됐을 당시 부품 접근성은 당연히 국산 티뷰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출고 당시 모습으로 복원하려는 지금은 상황이 뒤집혔다. Z3 차주는 BMW의 글로벌 클래식 부품망을 통해 일부 차체 부품을 새 제품으로 주문할 수 있지만, 티뷰론 차주는 남아 있는 재고와 폐차 부품, 동호회 거래망을 먼저 찾아야 한다.
BMW그룹 클래식은 Z3를 공식 부품 복각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현재 공개 목록에는 Z3용 뒷범퍼와 프런트 패널, 연료필터·압력조절기 관련 부품 등이 올라와 있다. 생산이 끝난 지 20년이 훨씬 지난 차의 차체 부품을 제조사가 다시 만들어 순정부품 번호로 공급하는 것이다.
현대차도 티뷰론을 중요한 헤리티지 모델로 다룬다. 2025년에는 1996년식 티뷰론을 바닥부터 복원하는 과정을 공식 콘텐츠로 소개했다. 엔진과 도어, 실내 부품, 휠까지 되살려 트랙을 달리는 모습도 공개했다. 그러나 이는 동호인과 전문가가 참여한 개별 복원 프로젝트였다. 일반 소유자가 단종된 티뷰론 범퍼나 대시보드, 시트 원단의 재생산을 신청하고 새 순정부품을 구입할 수 있는 상설 복각 프로그램과는 다르다.
차이는 더 오래된 차량에서 선명해진다. 1993년 출시된 포르쉐 911 993은 같은 시기 현대 쏘나타Ⅱ, 기아 세피아와 비슷한 차령이다. 포르쉐는 993만을 위해 6500종이 넘는 순정부품을 마련했다고 밝힌 바 있다. 차체와 엔진 부품은 물론 변속기 하우징, 휠 캐리어 등 단종 후 다시 제작한 품목도 공식 유통망을 통해 공급한다.
반면 국내에서는 부품번호를 확인하는 첫 단계부터 장벽이 있다. 현대모비스의 소비자용 상세 부품검색 시스템은 현대차는 1997년 1월 이후, 기아차는 2000년 7월 이후 생산 차량을 대상으로 한다. 이에 따라 1990년 스쿠프, 1992년 세피아, 1993년 쏘나타Ⅱ 같은 차량은 차대번호를 입력해 도면과 품번을 확인하는 현재의 소비자용 WPC 범위에서 벗어난다.
물론 국산 올드카의 모든 부품이 독일차보다 구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쏘나타Ⅱ나 아반떼, 티뷰론처럼 많이 팔린 차량은 필터와 벨트, 브레이크, 하체 부품을 호환품이나 재생품으로 비교적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해외 주문이 필요한 독일차보다 일상 정비가 쉽고 공임도 낮다.
문제는 ‘달리게 하는 부품’이 아니라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부품’이다. 범퍼와 램프, 몰딩, 웨더스트립, 엠블럼, 센터페시아, 도어트림, 시트 원단처럼 차종과 색상별로 나뉜 부품은 재고가 소진되면 대체가 어렵다. 엔진은 수리했지만 실내 버튼 하나를 찾지 못하거나, 멀쩡한 차량 한 대를 부품용으로 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독일 브랜드는 이런 부품까지 차량 가치의 일부로 본다. 메르세데스-벤츠는 클래식 순정부품 체계를 운영하며 과거 도면과 제조 지식을 활용해 단종 부품을 다시 공급한다. 일부 품목에는 3D 프린팅도 적용하고 있다. 1990년대 W124와 W202 차주가 모든 부품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제조사가 복원용 부품을 다시 생산하는 공식 통로가 살아 있다는 점은 국산차와 다르다.
국내 완성차 업체는 부품 공급 의무를 충실히 수행해 왔지만 제도의 시간표가 짧다. 현행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은 동일 형식 차량을 최종 판매한 날부터 8년 이상 정비 부품을 공급하도록 규정한다. 1990년대 차량은 이미 의무기간을 훌쩍 넘겼다. 이후에는 남은 재고와 수요, 공급업체의 생산 여부에 따라 부품의 생사가 결정된다.
현대차와 기아는 스쿠프, 티뷰론, 세피아, 크레도스 등 1990년대 주요 모델을 헤리티지 아카이브에 올리고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고 있다. 하지만 차량을 기억하는 것과 도로에서 살리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과거 모델의 사진과 제원이 남아 있지만, 해당 차량의 단종 부품을 다시 주문할 수 있는 클래식 부품 카탈로그는 확인되지 않는다.
같은 1996년생이라도 BMW Z3는 제조사가 범퍼를 다시 찍고, 현대 티뷰론은 차주가 남은 범퍼를 찾아 전국을 돈다. 같은 1993년생이라도 포르쉐 993은 수천 종의 클래식 부품망 안에 있지만, 쏘나타Ⅱ는 소비자용 상세 부품검색 범위에서도 밀려나 있다.
국산차가 독일차보다 기술적으로 복원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제조사가 오래된 차를 계속 관리할 상품으로 보느냐, 공급 의무가 끝난 과거 제품으로 보느냐의 차이다. 헤리티지는 박물관에 세워둔 복원차 한 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도로에 남은 차량이 몰딩과 램프, 고무부품 하나 때문에 사라지지 않도록 부품번호와 도면을 보존하고, 수요가 모인 품목을 소량이라도 다시 생산해야 한다.
1990년대 국산차의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다. 복각 체계를 만들지 않으면 몇 년 뒤에는 차값보다 부품을 찾는 일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전시장에서는 국산차의 역사가 빛나는데, 정작 도로에서는 그 역사의 부품이 사라지는 역설을 끊어야 할 때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