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메모]“규제의 역설”…규제할수록 집값 오르는 이유는?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강남 아파트”…희소성만 높여
풍부한 유동성·지역 간 인프라 격차 등 집값 상승 이끌어

안재성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기자

[세계비즈=안재성 기자]미국 정부는 1919년 금주법을 시행했다. 술을 제조하거나 유통하는 행위가 모두 금지됐다. 

 

그러나 금주법 하에서도 여전히 술을 원하는 소비자들은 다수였으며, 그들에게 술을 공급하는 갱단이 존재했다. 

 

이런 탓에 금주법은 술을 마시는 사람을 없애긴 커녕 거꾸로 술에 ‘아무나 즐길 수 없는 희귀 제품’이라는 희소성을 붙여서 가격이 수십 배로 뛰어오르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심지어 술에 불법 화학약품을 섞은, ‘가짜 술’까지 대거 유통됐다.

 

아울러 술의 불법적인 유통 경로를 장악한 갱단이 큰 돈을 벌면서 미국 갱단의 최전성기까지 열어젖혔다. 이는 ‘규제의 역설’을 나타내는 좋은 예로 종종 거론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뤄진 부동산 폭등도 이와 비슷한 흐름을 나타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후 3년여 간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축소 등 대출규제 강화, 종합부동산세율과 양도소득세율 및 취득세율 상승, 분양가상한제 도입,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등 23차례에 걸쳐 수많은 규제를 쏟아냈다. 정부는 여러 번 “규제 강화를 통해 집값을 반드시 안정화시키겠다”며 의지를 표했다. 

 

그러나 결과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부동산 폭등이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3년(2017년 5월~2020년 5월) 간 서울 아파트 중위값은 6억600만원에서 9억2000만원으로 52%나 급등했다. 이는 중위값이 13% 떨어졌던 ‘이명박 정부’나 27% 상승에 머물렀던 ‘박근혜 정부’보다 훨씬 높은 상승률이다. 

 

5월 이후로도 집값 상승세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주 0.04% 올라 9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는 우선 ‘좋은 집’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다수 존재하는 영향이 컸다. 서울 강남권 등 수도권 요지는 타 지역에 비해 교육, 문화, 의료 등의 인프라가 월등하다. 소비자들은 비싼 값을 치르고서라도 좋은 곳의 집을 확보하고 싶어 한다. 

 

또 금주법의 갱단처럼 소비자들이 집값을 지불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풍부한 유동성이 존재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0.5%까지 내려간 초저금리로 인해 시중 유동성은 현재 약 3000조원에 달한다. 이 유동성은 가장 안전한 자산인 부동산, 특히 수도권 요지의 아파트로 쏠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강한 규제는 오히려 집값을 밀어 올리는 역할을 햇다. 투기과열지구, 청약조정지역 등 정부가 규제를 강화한 지역의 집값은 더 크게 뛰어 “정부가 집값 폭등할 곳을 골라줬다”는 조소까지 등장했다. 

 

즉, 좋은 위치의 집에 대한 소비자들의 열망과 풍부한 유동성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강한 규제는 아파트, 특히 서울 강남권 등 수도권 요지의 아파트에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다”는 희소성을 더해준 것이다. 희소성은 강남권 등의 아파트에 프리미엄 가치를 더했으며, 소비자들이 더 비싼 가격을 치르도록 유도했다. 점점 더 강해지는 규제는 점점 더 희소성을 높여서 “지금 당장 사야 한다”는 실수요자들의 ‘패닉 바잉’까지 일으켰다. 

 

정부는 투기과열지구의 시가 15억원 이상의 고가 아파트에 LTV를 0%로 축소했지만, 이는 그 아파트의 희소성만 더 높여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토교통부 아파트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의 아크로리버파크 전용면적 84㎡(공급면적 34평)는 35억7000만원에 팔렸다. 평당 1억500만원으로 역대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만약 에르메스, 샤넬, 까르띠에, 구찌 등 명품의 가격이 지금보다 절반으로 떨어진다면, 명품의 인기는 어떻게 될까? 소비자들이 접근하기 더 편해졌으니 인기가 더 올라갈까?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경험과 상식으로 알고 있다. 그 순간 명품의 인기는 곤두박질칠 것이다. 소비자들이 명품을 원하고, 또 비싼 가격을 치를 능력이 있는 한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고가의 제품’이란 희소성은 명품 브랜드의 가치를 오히려 더 높여준다. 

 

근래 몇 년 간 서울 강남권을 비롯한 수도권 요지의 아파트에도 명품과 같은 이론이 작용하고 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요새 서울 강남권 아파트는 ‘현대판 귀족’의 상징처럼 통용된다”며 “비싸면 비쌀수록 인기가 더 높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집값을 잡으려는 의지는 나쁘지 않다. 지나치게 폭등한 집값은 경제적·사회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므로 적절한 수준에서 조절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제반 상황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누르기만 해서는 효과를 거둘 수 없다. 과도한 규제는 거꾸로 해당 재화의 브랜드 가치만 높여줄 뿐이다. 이것이 규제의 역설이다. 

 

오히려 수도권 요지의 아파트 공급을 늘리고, 지역 간 인프라 격차를 줄이는 동시에 규제를 완화해 “언제든 좋은 위치의 아파트를 쉽게 살 수 있다”는 인식을 줘야 집값을 잡을 수 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 시절 이같은 방식을 통해 집값이 안정화됐다. 

 

문재인 정부가 정말로 집값을 잡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제반 상황과 규제의 역설을 감안해 부동산 정책을 근본부터 갈아엎어야 할 것이다.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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