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원 기자] 무리한 사업확장이나 인수합병 대신 ‘친구와 잘 지내는’ 전략적 제휴 강화에 나서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아직 끝나지 않은 데다가, 고금리·고환율·고물가 등 ‘3고(高)’ 현상이 장기화며 경영상 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새벽배송’을 예로 들 수 있다. 2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물가 상승으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새벽배송 시장도 축소된 가운데, 협업을 택한 기업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한동안 유통업계의 화두로 꼽히던 새벽배송은 모든 기업들이 도전할 만큼 시장이 컸다. 하지만 최근 롯데온, BGF리테일, GS리테일 등은 새벽배송에서 철수했다.
새벽배송은 높은 제반 비용이 필요한 사업으로 알려졌다. 주로 과일·채소·육류 등 신선식품 주문량이 많아 신선도 유지를 위한 ‘콜드체인 시스템’을 갖춘 물류센터를 구축하고 있어야 하다보니 일반 물류센터보다 운영비용이 더 크다.
이뿐 아니라 냉동탑차 가동, 새벽시간대 업무가 이뤄지는 특성상 높은 인건비 부담도 있다. 최근 소비 축소와 함께 새벽배송을 ‘그만 두겠다’고 밝힌 기업이 늘어나는 이유다.
반면, 네이버쇼핑은 파트너십을 통해 새벽배송 전쟁에 뛰어들었다. 네이버쇼핑은 올해 3월 SSG닷컴·CJ대한통운과 손잡고 신선식품 새벽배송 시장에 나섰다. 이와 관련 지난 5월부터 육아, 생필품 등 일부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당일배송’ 테스트를 진행한 바 있다. 하반기부터는 새벽배송도 CJ대한통운의 물류 인프라를 통해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네이버는 커머스 사업을 총괄하는 포레스트CIC(사내독립기업)에 이달 신규 배송 서비스 개발을 위한 물류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 내 흩어져있던 물류 관련 인력들을 한 곳에 모아 태스크포스팀을 만든 것.
G마켓도 SSG닷컴의 새벽배송과 쓱배송을 통해 제공되는 온라인 장보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전용관 ‘스마일프레시’를 신설했다. 고객들은 G마켓 사이트에서도 신선식품 당일배송과 당일 주문한 장보기 상품을 이르게 수령 가능한 쓱배송을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스마일프레시 전용관에는 SSG닷컴이 쓱배송, 새벽배송을 통해 취급하고 있는 대부분 상품을 연동해 입점한다. 지마켓은 이번 협업으로 신선식품 새벽배송을 처음 도입하게 된다.
회사 측에 따르면 신세계 그룹사의 검증된 상품, 배송을 비롯한 서비스 인프라 전반을 공동 활용하는 데 의의가 있다. 지마켓은 SSG닷컴이 보유한 전국 이마트 상품과 물류를 함께 이용하게 되는 셈이다.
이곳 관계자는 “고객들에게 다양한 상품과 확장된 배송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편의를 극대화해 좋은 반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새벽배송을 중단한 업체들은 소비자가 주문한 상품을 1~2시간 이내에 배송해주는 ‘즉시배송’ 서비스로 눈을 돌렸다. 기존 자사 인프라를 활용하는 곳도 있지만, GS프레시몰은 협업도 선택했다. 지난 5월부터 배달앱 요기요와 협업해 전국 장보기 서비스 ‘요마트’를 출시해 즉시배송 사업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새벽배송 이외에도 유통업계 다양한 분야에서 협업 봇물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최근 KT와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 국내 유통·물류 분야 디지털 혁신에 나선다는 포부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KT의 디지코 역량을 바탕으로 현대백화점그룹의 사업을 혁신해 한 차원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목표다.
이와 관련 양사는 현대홈쇼핑에 음성인식·음성합성, 텍스트 분석, 대화엔진 등 AI 기술을 바탕으로 고객센터 업무를 효율화하는 ‘AI컨택센터(AICC)’를 구축한다. AI 물류사업을 통한 물류 분야 디지털 혁신도 추진한다.
현대백화점 식품 전문 온라인몰 ‘현대식품관 투홈’의 기존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효율적인 배송 경로를 설계하는 내용이다. 현대백화점 식당가엔 KT의 ‘AI 서빙로봇’을 도입, 로봇이 식당 손님에게 음식 전달과 퇴식 등의 일을 맡게 된다.
KT와 현대백화점 그룹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 행동분석을 통한 맞춤형 타깃 마케팅, 멤버십 제휴, 임직원 사무공간 혁신 등 분야에서도 협력할 예정이다.
CJ피드앤케어는 GS건설과 손잡고 한국형 연어 양식 사료를 개발할 예정이다. 양사는 부산 기장군에 있는 연어 스마트양식 시설을 활용, 친환경 연어 사료 개발에 나서고 있다. CJ피드앤케어는 ‘육상 순환여과 방식’의 연어 양식에 적합한 사료를 개발하고, GS건설은 자체 물 처리 기술에 CJ피드앤케어의 사료 연구개발 기술을 접목해 친환경 양식 연어 생산에 돌입하게 된다.
업계에 따르면 육상 순환여과 방식은 사육수(양식에 활용되는 물)를 여과 장치 등을 통해 재사용하기 때문에 물 사용량을 줄일 수 있고 상대적으로 친환경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김선강 CJ피드앤케어 대표는 “현재 연어는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번 협업이 양사의 기술을 토대로 연어 시장을 새롭게 개척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happy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