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이 모씨(38)는 말복인 지난 14일, 동료들과 함께 오랜만에 삼계탕을 먹기로 했다. 하지만 점심 시간 들른 식당에서 1만원 후반대인 삼계탕 가격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결국 이 씨와 그의 동료들은 발길을 돌려 한 백반집에서 한 그릇에 9000원인 반계탕을 먹었다. 퇴근 후 그는 박봉인 남편과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남몰래 눈물을 삼켰다. 이 씨는 “올해 마지막 복날인데다 임신 9주차라서 삼계탕으로 몸보신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먹거리 물가가 너무 올라서 부담이 크다”면서 “올해 유난히 폭염이 심했는데, 다음달 추석을 앞두고 먹거리 물가가 더 뛸지 걱정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소비자물가지수가 넉 달째 2%대를 기록하면서 통계상으론 안정세를 띠는 형국이다. 하지만 치솟는 먹거리 물가는 여전히 서민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서울 지역 삼계탕 한 그릇 외식 가격은 지난달 처음으로 평균 1만7000원을 넘었다. 7년 전(1만4077원)에 견줘 21.0%(2961원)나 급등했다. 서울의 유명 삼계탕 식당인 토속촌과 고려삼계탕은 기본 삼계탕 한 그릇에 2만원에 이른다.
여름에 인기가 많은 냉면 가격도 비싸기는 매한가지. 서울 유명 냉면집인 을지면옥, 을밀대의 냉면 한 그릇 가격은 1만5000원이다. 우래옥은 냉면 한 그릇에 1만6000원을 받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물가 상승률(2.9%)는 소비자물가 상승률(2.6%)보다 높았다.
올 여름 계속된 장마와 폭염에 따른 작황 부진으로 밥상 물가도 ‘빨간불’이 켜졌다. 15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전날 기준 배추 1포기 가격은 6159원으로 전월 대비 27.57% 급등했다. 오이(10개 기준·다다기계통) 가격은 1만2904원으로 한 달 새 14.82% 뛰었다. 과일값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신고배(상품) 10개당 가격은 6만6992원으로 평년 대비 71.37%나 올랐다. 전년에 견주면 130.11%나 상승했다.
모든 음식에 필수인 소금값도 뛰고 있다. 지난 14일 기준 굵은소금(5㎏)당 가격은 1만941원을 기록했다. 전년에 견줘 13.39% 내렸지만, 평년 대비로는 18.05%나 높은 가격대다. 인건비 상승 및 올 여름 긴 장마가 염전의 소금 생산에 악영향을 미쳤다.
먹거리 물가 상승세가 자칫 소비자물가를 자극할지도 주목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6% 상승하며 기록하며 4개월 연속 2%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농수축산물 물가는 5.5% 상승하며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크게 웃돌았다. 특히 농산물 물가는 집중호우 등 기상악화의 영향으로 9.0%나 급등했다.
정부는 추석 성수기를 앞두고 밥상물가 관리에 나섰다. 정부는 이달 초부터 과일·채소류 등 총 13개 품목에 대한 할인 지원을 조기에 시작하기도 했다. 김범석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지난 14일 강원 강릉시 안반데기 고랭지 배추밭을 방문한 자리에서 “올해 여름배추 재배면적이 전년에 비해 감소(-6.2%)하면서 원활한 수급을 위한 생육 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라며 “계약재배 농가의 생육관리를 위해 제공하는 병해충 예방 약제 할인공급(30% 이상 할인)을 추가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범수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지난 2일 “장관 주재로 지역별 재해 대응, 수급 및 생육 상황 등을 매일 점검하겠다"고 강조했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