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대책 대혼선] 전문가 5인에게 해결방안 들어보니 “갈팡질팡 규제, 정부·금융당국이 가계 빚 더 키워”

대한민국이 대한‘빚’국이 될 위기에 처했다. 서울과 수도권 중심의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감에 시장 금리 인하 전망이 겹치며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흐름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낮출 거란 기대로 시장 금리는 하락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강화 압박에 가계대출 금리는 오히려 뛰는 등 혼란이 커지는 형국이다.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는 27일 전문가들로부터 현 가계대출 관리 대책의 문제점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들어봤다.

 

◆일관성 없는 대책, 가계부채 더 키워

 

전문가들은 정부와 금융당국의 오락가락 대책이 가계부채 위기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이민환 인하대 경영대학원장은 정부와 금융당국이 일관성 있는 대책을 펴지 못한 점을 가장 큰 실책으로 꼽았다. 이 원장은 먼저 “(현 부동산 시장은) 앞으로 더 가격이 오를 거라는 기대심리로 집값이 오르고 있는 형국”이라면서 “지금은 대출 금리가 높더라도 가격으로는 통제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금융당국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행장들을 소집해 가계대출 관리를 강화하라고 주문했다가 최근엔 대출 금리가 높다며 더 센 개입을 시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정책 기조를 갑자기 바꾸면 정책 신뢰도를 제고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도입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2개월 연장한 점도 정부의 정책 신뢰도를 낮춘 사례로 들었다. 어느 정도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할 걸 감수하더라도 정책의 일관성은 유지해야 한다는 게 이 원장의 설명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갑작스러운 DSR 규제 연기를 비판했다. 서울·수도권 부동산의 ‘막차 탑승’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이달 말까지 주택 매매계약을 체결하면 관련 규제를 모두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먼저 “2단계 스트레스 DSR 연기는 정부가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준 것”이라며 “정부가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겨 가계부채 확대를 용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론 DSR이 시행돼도 대출 가능 금액은 많아야 2000만~3000만원 정도 낮아지는 수준이고, DSR 적용 예외 대상 대출이 많기 때문에 이 뿐만으로는 가계대출 관리에 역부족”이라며 “전세대출과 정책대출 등도 DSR 적용 범위에 포함하는 총량 규제 등을 통해 가계대출 증가세를 잡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부동산 경기를 통한 경기 진작 효과를 고려하더라도 대출 수요를 지나치게 자극한 게 문제라는 목소리도 있다. 이 원장은 “인구문제 해법 중 하나로 제시한 것 자체는 바람직하더라도 신생아특례주택구입대출, 신생아특례전세자금대출 등 정책 모기지가 과도한 수요를 유발했다”고 분석했다.

 

일률적인 규제가 지닌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도 나왔다. 권혁준 순천향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단기적인 대출 규제와 대출 금리 인상은 일시적으로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권 교수는 “특히 주택 시장의 안정화, 가계소득 증가 등의 장기적인 대책이 부족한 상황에서 대출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8·8대책으론 집값 안정화 한계…상환 여력 고려한 맞춤형 정책 뒤따라야

 

집값을 잡겠다며 정부가 대책으로 내놓은 ‘8·8 주택공급 확대방안’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8·8대책은 향후 6년간 서울과 수도권에 총 42만7000호 이상의 주택과 신규 택지를 공급하는 게 골자다. 서울과 인근 지역 그린벨트를 해제해 8만호 규모의 신규택지를 공급하고 서울 인접 3기 신도시 등 수도권 공공택지의 경우 토지이용 효율화를 통해 2만호 이상 추가, 빌라 등 비아파트 11만호 이상 신축매입임대로 공급하겠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8·8대책은) 가장 수요가 많은 강남 3구, 용산구는 제외해 직주근접이라는 핵심적인 주택정책과도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오 원장은 “부동산은 일반 재화와 달리 공급까지 장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특징을 지닌다”며 “신규 택지 후보지 발표 후 공공주택지구 지정, 지구계획 수립, 토지 보상, 주택 착공 등의 과정을 모두 거치려면 주택 입주까지 8∼10년가량이 소요된다”고 분석했다.

 

공급 대책에 앞서 실수요자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거주가 목적인 실수요자들의 피해가 커지는 상황”이라며 “현재는 (진정한 의미에서) 실수요자들이 집을 매수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예로 월 2000만~3000만원을 버는 사람이 대출을 받고 전세를 내주면 10억원가량의 부동산을 구매할 수 있는 현실이 정말 실수요자를 위한 게 맞느냐는 것이다.

 

대출 규제를 강화하더라도 결국 고신용자만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란 주장도 있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정말 대출이 필요해도 대출 규제로 받지 못하게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과 청년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면서 “현재 가계 대출의 상당 부분이 고신용자이기 때문에 무주택자나 청년들에게는 대출을 달리 적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 교수 역시 가계별 부채 상환 여력에 따른 맞춤형 정책이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상환 능력이 충분한 가계에 대해서는 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부채 비율이 높은 가계에 대해서는 규제를 강화하는 등 차별화된 규제가 필요하다”며 “금융당국은 일률적인 규제보다는 맞춤형 정책을 통해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서진 기자 westjin@segye.com

이주희 기자 jh224@segye.com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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