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탄핵과 MZ세대] K팝 응원봉이 시위의 상징으로... MZ세대가 바꾼 집회 문화

9일 오후 대구 중구 CGV 대구한일 앞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 시민들이 응원봉을 흔들며 윤석열 대통령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MZ세대가 처음으로 계엄과 탄핵이라는 굵직한 정치 이슈를 맞이하면서 이들의 행보도 주목받고 있다.

 

흔히 ‘MZ’하면 눈치보지 않고 부당하다고 느끼는 부분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 자신의 개성을 중시하는 점, 재미를 추구하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특히 정치 이슈에는 대체로 무관심하다는 평이었다. 

 

MZ세대는 좌우 정치적 스펙트럼에 얽매이지 않고, 불공정·불합리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정 이념보다 ‘옳고 그름’을 우선순위에 둔다. 그런데도 이번 계엄∙탄핵 이슈가 이들 세대의 잠자던 정치 감각을 일깨웠다.

 

여기에 세대 특성이 정치 이슈를 대하는 태도나 모습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이전 세대와는 다른 모습으로 표출됐다. 이런 성향은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시위 참여 방식부터 길거리 집회에서 잘 드러난다.

 

집회를 찾은 MZ세대들은 과격한 집단행동보다 ‘평화로운 실리’를 이루는 게 목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집단적 저항’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개인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게 요즘 MZ식 시위다.

 

이번 집회에서 어두운 밤하늘을 밝힌 것은 촛불이 아닌 ‘아이돌 응원봉’이었다. 응원봉이 대통령 탄핵 집회에 사용되면서 온라인상에서도 수요가 급증했다.

 

실시간 쇼핑몰 검색어에서 1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또 X를 비롯한 SNS에서는 ‘나만의 탄핵봉 만들기’가 실시간 트렌드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MZ세대는 K팝을 세계로 끌어올린 세대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현장은 기존 집회에서 흔히 들리던 투쟁가요 대신 가볍고 발랄하면서 신나는 K팝 음악과 EDM으로 가득 찼다. 

 

이런 MZ세대의 정치 이슈 참여와 영향력은 이미 수년 전부터 두드러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2021년부터 4·7 재보궐선거에 이어 제1야당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불어닥친 ‘이준석 열풍’이 대표적이다.

 

당시 MZ세대가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캐스팅 보터’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정가에서도 이들 MZ 세대의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젠더 이슈부터 공정성 논란 등 MZ세대가 정치는 물론 사회를 뒤흔드는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데 이번 12∙3 계엄 사태가 이들의 영향력을 더욱 키웠다는 분석이다.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 시민들이 응원봉을 흔들며 윤석열 대통령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또한 이번 집회가 빠르게 확산할 수 있었던 데는 MZ세대가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SNS의 역할이 컸다. 참가자들은 집회 현장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여론을 형성했다. SNS는 시위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는 플랫폼으로 활용돼 집회 규모를 키우고 다양한 지역과 세대를 연결했다.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도 촛불 이모티콘을 SNS 프로필에 게시하며 연대를 표했다.

 

MZ세대는 집회가 끝난 후에도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치우며 책임 있는 시민의 모습을 보였다. 단순한 저항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회를 행동으로 보여줬다. 

 

미담도 가득했다. 집회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도 현장의 참가자들에게 간식을 선물하며 마음을 표현했다. SNS에는 국회 인근 카페, 빵집, 식당 등에 대량의 음식을 선결제 해뒀다는 시민들의 게시글이 이어졌다.

 

예컨대 ‘베이글과 크림치즈, 커피 50세트를 어떤 매장에 선결제 했으니 아무개의 이름을 대고 수령해서 쓰시면 된다’ 하는 식이다. 커피뿐 아니라 국밥, 라면과 분식, 디저트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MZ세대의 집회 문화는 과거의 투쟁을 기억하면서도 평화롭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응원봉이나 아이패드 등 자신만의 아이템을 이용해 집회에 참여하는 건 집회에서도 남들과 다른 자신을 표현하겠다는 태도”라며 “젠지(Z세대)들이 자기표현의 진화된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희원 기자 happy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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