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우리금융지주 등 주요 금융지주의 검사 결과를 내달로 미룬 이유를 “더 매운 맛을 보여주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20일 서울 여의도 주택건설회관에서 ‘건설업계·부동산 시장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밝혔다. 이 원장은 “저의 남은 임기 6개월 동안 검사·감독 방향은 여전히 엄정·무관용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며 “심지어 지금보다 더 강한 기조로 검사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예고했다.
금감원은 우리·KB·농협금융지주와 은행에 대한 정기검사를 마치고 제재 절차를 진행 중이다. 결과는 당초 이달에 발표하기로 예정됐지만 내달로 미뤄졌다. 이 원장은 “경미하게 취급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의미였다면 ‘약한맛’으로 이달에 발표했을 것”이라면서 “원칙대로 ‘매운맛’으로 시장과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1월에 발표하는 것이 적정하다고 판단했다.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는 원칙은 달라진 부분이 없다”고 밝혔다.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은 현 경영진이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친인척의 수백억 부당대출을 사전에 인지했음에도 금융당국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금감원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별도의 제보를 통해서였다. KB금융과 국민은행은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 부실뿐 아니라 불공정거래·부당대출 등 각종 금융사고가 발생해 논란이 됐다. 농협금융·농협은행 역시 대규모 배임·횡령 등 금융사고가 잇달아 발생했고 농협중앙회의 무분별한 인사·경영 개입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 원장은 “이들 금융지주에 공통된 우려 사항이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밝힐 것”이라면서 “최근 발생한 정치·경제적 어려움을 기회로 삼아 그냥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경고했다.
하나금융지주는 최근 지배구조 내부 규범을 개정해 임기 중 70세가 넘어서도 주어진 임기를 채울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이 연임 시 임기가 3년 이상 가능해졌다. 함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 만료된다. 이 원장은 “함영주 회장이 셀프 연임 등으로 비판받을 행동을 하지 않을 거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함 회장의 연임 도전 여부가 공개적으로 확인이 안 된 만큼 셀프 연임을 판단하기엔 이르다. 함 회장의 심성 등을 비춰보면 개정된 규정을 적용받지 않겠다고 하실 분”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가계대출 관리 관련해서 이 원장은 “대출 원리금 상환에 따라 소비가 위축된 점을 고려하면 결국 가계대출 증가 추이를 꺾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이내로 관리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는 변함이 없어야 한다. 이런 원칙은 내년에도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만 올해처럼 시기별 대출 쏠림이 과하게 발생하지 않도록 연중 평준화 작업을 통해 관리할 예정”이라면서 “어려움을 겪었던 실수요자께 자금공급이 제대로 공급될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두고 있다. 지방금융과 관련해서는 가계대출 관리에 여유를 주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지방은행의 지역 건전성 유지 범위 내에서는 가중치 측면에 좀 더 버퍼를 두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최정서 기자 adien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