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이 직접 라면 가격을 언급하니까 왠지 위로가 되더군요.”
서울 성북구에서 소규모 요리주점을 운영하는 A씨는 식재료의 잇따른 가격 상승으로 힘든 상황에서 이달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의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에서 희망을 본다고 12일 말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주재하며 “라면 1개에 2000원 한다는데 진짜냐”며 “많이 오른 물가가 국민들에게 너무 큰 고통을 주고 있다”고 내각 및 참모들에게 대책 마련을 지시한 바 있다.
A씨는 “올해 들어 라면, 소스, 냉동식품 같은 공산품이 특히 많이 올랐다. 그나마 채소는 요즘 가격이 잡힌 듯 한데 나머지 식재료는 2~3개월마다 500~1000원씩 오르는 것 같다”며 “그렇다고 메뉴 가격을 올리기도 어렵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기준으로 이전보다 매출이 10% 이상 줄었는데 가격을 올리면 손님이 더 줄어들까 무섭다. 주변 상가에 공실이 늘어나는 걸 보면 속이 탈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자영업자 수는 565만9000명으로, 1년 전 보다 2만2000명(0.4%) 감소하는 등 올해 들어 감소세를 이어지고 있다.

강원 원주시에서 토핑 요거트 테이크아웃 매장을 운영하는 B씨의 상황도 비슷하다. 그는 “최근 한 달 사이에 블루베리 가격이 두 배로 뛰었다. 벌꿀집도 1년 만에 30% 이상 올랐다. 원래 국내산을 썼는데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수입산으로 바꿨다”며 “식재료만 오른 게 아니다. 포장용기도 비싸졌다. 배달 전문이라 플랫폼 수수료까지 뗀다. 아르바이트 인건비, 월세, 전기세 등을 내고 보면 결국엔 마이너스인 실정”이라고 밝혔다.
경북 경주시의 베이커리 카페 점주 C씨는 “올해로 영업 3년차인데 오픈 당시와 비교하면 커피 원두가 kg당 7000~8000원 올랐고, 초콜릿은 3만원이던 게 7~8만원까지 뛰었다. 버터도 2개월 주기로 주문을 할 때마다 가격이 올라있다”며 “결국 초콜릿은 벨기에산을 쓰다가 최근 국내산으로 바꿨다. 손님 컴플레인은 없지만 스스로 느끼기에 식감 등에서 차이가 난다. 그래도 어쩌겠나. 가격을 올릴 수는 없으니…”라고 답답해했다.
이러한 식재료·식품 물가는 소상공인을 포함한 서민 전체가 몸으로 체감하는 분야다. 이 대통령이 물가 상승의 예시로 라면을 꼽은 것도 대표적 서민 먹거리기 때문이다. 최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라면 물가지수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전인 지난해 11월과 비교해 4.7% 상승했다.

라면 외에도 가공식품 73개 품목 가운데 52개의 물가지수가 올랐다. 계엄 이후 6개월간 이어진 혼란기에 주요 식품 기업들이 연이어 가격을 인상한 것. 범위를 더 넓혀 지난 2022년 5월 윤 정부 출범 당시와 비교하면 가공식품 74개 품목 중 71개가 가격이 올랐다. 그중 3분의 2가 넘는 50개 품목은 두 자릿수 이상 상승률을 보였다.
통계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가공식품(4.1%) 외에도 돼지고기(8.4%), 국산 쇠고기(5.3%), 고등어(10.3%), 수입 쇠고기(5.4%) 등의 물가가 1년 전보다 올랐다. 서비스 물가로 잡히는 외식(3.2%) 분야도 상승한 가운데 생선회(5.6%)와 치킨(4.7%)의 오름폭이 컸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권교체에 따른 변화의 기대감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과 당정협의를 거쳐 조만간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13일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한국식품산업협회, 한국외식산업협회, 소비자단체, 전문가, 농림축산식품부 소속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열고 고물가 상황에 관한 의견을 청취하고 대응책을 살피기로 했다. 국무총리 후보자가 물가 관련 간담회를 여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통상적으로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나 차관이 주재한다. 김 총리 후보자는 앞선 기자간담회에서 “매일매일 부딪히는 음식 물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편 소상공인 사이에서는 보다 실질적인 지원 정책을 바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A씨는 “임시공휴일 정책을 남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휴일이 길어지면 사람들이 오히려 해외로 나가버린다는데 실제로 최근 1년간 임시공휴일이 생길 때마다 오히려 매출이 줄었다. 자영업자 커뮤니티에서도 많이 나오는 얘기”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간 소상공인 지원 정책의 기준이 너무 현실적이지 않았다며 개선을 부탁했다.
B씨는 “배달 플랫폼 수수료가 너무 부담스럽다. 배달료는 어쩔 수 없지만 중개 수수료, 결제정산 수수료가 전체 매출의 15%를 차지한다. 이대로면 배달 주력 매장은 줄줄이 폐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개인적으로는 온플법(온라인플랫폼 거래공정화법) 제정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온플법은 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시절과 대선 후보 시절 도입을 주창한 수수료 상한제도다.

C씨는 “사업자용 전기세를 낮춰주면 좋겠다. 여름철, 겨울철이면 매월 50만원이 우습게 찍힌다”며 “올 여름은 특히나 덥다는데 벌써 걱정이다. 경주는 벌써부터 오전에 30도가 넘고 있다. 오전부터 에어컨을 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에서 시행 중인 ‘꿈이음 청춘카페 지원사업’을 거론하며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카페 이용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인데 이러한 사업의 범위가 더 늘어나면 사업자와 이용자 모두에게 좋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